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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은 만들어낸 전설이며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주장 및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유적의 부재 ====
* 발해만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기후방정에서는 箕자가 아니라 㠱자이며 고죽 역시도 한자가 다르며 이는 명문의 해석을 잘못한 것이라 하였다.<ref>엠파스 백과사전 고죽국 참조</ref>
* [[1102년]](숙종 7년)에 [[고려]]의 왕이 [[평양]]에서 기자의 무덤을 찾아내고 기자묘와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1950년대]] 북조선 학자들이 발굴한 결과 '벽돌조각, 사기조각' 밖에 나온것이 없었다<ref>허종호, 《고조선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남-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 p.81 ~ 82</ref>.
*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익산]]에 있는 기자조선의 후손 무강왕의 무덤은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