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홍씨 (성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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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남 : [[양원군|양원군 희]](楊原君 憘)
** 삼녀 : [[정숙옹주 (성종)|정숙옹주 여란]](靜淑翁主 如蘭)
 
 
◆ 숙의 남양홍씨(淑儀 南陽 洪氏) 1456(세조 2)~1523(중종 18)
8남 3녀 출산 홍길童의 딸이지 홍일동의 딸이 아니다.
숙의 홍씨는 일개 왕족인 자산군으로 있던 잠저시절에 대궐의 잔치가 있자, 어머니인 노씨를 따라 진치 구경을 갔다가 어린 성종의 눈에 들어 금혼령을 내려 둔 뒤 소꼽동무로 삼았다. 성종의 나이 6세에 숙의의 7세에 만난 동무였다. 성종이 즉위 하던 해 반년이 지난해에 바로 입궁하여 공혜왕후가 옷과 패물을 내리자 사양하다가 성종이 재차 패물과 옷을 내리자 이번에는 할 수 없이 받았다. 숙의 홍씨는 지지와 해학이 있어 주변사람들을 늘 웃게 만들만큼 성격이 원만하였다.
인수대비가 성종 사후 궁에 살도록 허락하였고, 인수대비 사후 궁 밖에 나가 살다가 궁인들이 전해준 엄귀인과 정귀인의 참살 소식을 언문으로 오라비, 완원군, 영산군과 함께 돌려 중종반정을 도운 여류 공신이었다. 연산군이 성종 사후 상복을 입고 사는 홍씨를 가르 키면서 ‘저 보살은 죽지도 않는다 할 정도로 검소하였고, 죽는 그 날까지 상복을 벋지 않았다. 성종 사후 너무 많이 울어 기절하였다. 자신은 이미 쓸모가 없는 몸이라며 재를 둘러쓰고 울면서 성종과 함께 자진하고자 하자 주변사람들이 말렸다. 어린 왕자와 옹주들을 보살피라는 인수대비의 부탁을 받아들였다한다. 자신이 친히 소학과 열녀전 등 간단한 공부를 가르쳤고, 자신이 직접 옷을 지어 입었다. 자신의 사후 제사를 검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내렸으며, 자신의 어머니인 노씨의 묘 옆에 함께 장지를 정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성종은 숙의가 궁안에 들어오자 숙의 홍씨의 어머니인 노씨부인을 정경부인처럼 예우하여 가마까지 내려준 일이 있고, 죽은 홍일동을 좌찬성을 증직해 주었다. 숙의 홍씨의 묘지문은 당시 대제학이던 강혼이 짖고, 글씨는 집현전 제학 김영이 썼다. 연산군이 정3품 소용이라는 품계를 떼어 버렸으나, 중종이 종2품 숙의로 높여준다. 홍길동은 그녀의 서삼촌이고, 이복언니의 아들이 중종 때에 영의정을 지낸 유순이며, 홍숙의의 할아버지인 홍상직의 처 남평문씨는 열녀로 파주 적성에 세종은 정려각을 세워주었을 만큼 명문가의 딸이었다. 묘는 의정부시 녹양동에 현존한다. 어머니 노씨부인의 제사는 숙의 홍씨의 후손들이 숙의의 제사와 함께 지내고 있다.
 
안양군 완원군, 회산군, 견성군, 익양군, 경명군, 운천군, 양원군, 혜숙옹주, 복란(福蘭)인 정순옹주, 정숙옹주 등을 출산하였다.
(1) 안양군: 익안대군의 후손.
성종 8년 생 1477년 생: 전주이씨 안양군
(2) 완원군: 남양홍씨: 홍길동의 아들
회산군과 견성군: 도평군의 아들인 성묘의 아들로 효혜공주 평씨의 손자.·
완원군1480(성종 11)년 12월 30일~1509(중종 4) 10월 26일. 아명은 壽石.
성종대왕과 숙의 홍씨의 소생. 부인은 찬성에 증직된 최하림(본관 전주)의 따님이고, 계취
찬성에 증직된 허적의 따님이다. 숙용홍씨는 홍길同의 딸로 어머니는 홍상궁이다.
 
(3), (4) ◈ 회산군(檜山君)
 
회산군은 성종 11년(1481)년 12월 13일생으로 기재하고, 회산군은 일찍 죽고, 안순왕후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 회산군(檜山君) 성종 12(1481)년 12월 13일~중종 34(1539)년 4월 5일
부인은 찬의로 증직 받은 죽산 안씨 안방언(安邦彦)의 딸이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한명회의 아들,
 
▷ 견성군(甄城君): 전주이씨 효령대군의 아들인 성종의 아들
부인은 봉사 증찬성 신우현(申友縣)의 딸이다. 시호는 경민(景愍)이다. 신우현은 명빈의 형부로 명빈김씨와 사이가 좋은 후궁이었다.
 
(6) 정순옹주: 성종 22년(1590) 공주로 양녕대군의 딸이다.
 
성주이씨 구성군의 딸인 혜숙옹주
혜숙 옹주: 아명은 秀란 혜숙옹주 성종 21년 하가 4월하가.
(7). 익양군: 성주이씨 구성군의 아들 .1488년 7월 1일 생 아명은 石壽.
두 달 도 안 된 옹주가 졸하자 태장과 묘를 함께 쓴 것이다. 안순왕후 한가 낳았다고 보여 지는 딸의 시신과 태를 함께 묻은 것이다. 옹주는 양녕대군 성주이씨와 안순왕후가 한씨가 낳은 딸이다. 익양군의 증손자는 광해군 성주이씨이다. 정원군은 인빈의 아들이다. 광해군 성주이씨는 어머니가 공빈김씨가 아니다. 인빈김씨이다. 인조 반정 후 다시 살아난 광해군은 성주이씨이다. 광해군이 정원군이다. 부인인 문화유씨는 유효립의 딸로 유효립은 도평군의 후손으로 유량의 증손녀인 유상영의 딸이 낳은 아들인 도평군의 자손이 진천에서 살았다.
이들은 다시 인조 반정후 들어온다.
 
(8), 경명군: 밀양박씨 밀성군의 아들. 1489 8월 8일 생 충석
(9) 운천군: 성주이씨 구성군의 아들
아들, 1490 철수.
 
(10) 양원군: 1491년 생으로 강정왕의 아들은 안순왕후의 아들이고, 정작 양원군은 밀성군의 아들이다.
(11) 정숙옹주: . 1491년 여란.. 밀성군의 딸.
 
==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