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189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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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1월 29일]] 새벽 2시경, 종로방 견지동 68번지 윤영선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 양복 외투와 현금 50원을 비롯한 3백원어치의 금품을 절도당했다.<ref>"윤씨저에 절도", 동아일보 1924년 12월 29일자 2면, 사회면</ref>
 
[[1925년]] [[9월]] [[송도고등학교]] 실업장의 주임대리직을 임시로 맡기도 했다.<ref>매일신보 1925년 9월 17일자, 3면</ref> [[4월 17일]] [[개성군]] [[송도면]] 북본정 18번지에 [[동아일보사]] 개성지국이 개설되자 윤영선은 동아일보 개성지국장에 임명되었다.<ref>"社告", 동아일보 1925년 04월 17일자 03면 09단</ref> [[1926년]] 세계 기독교 대회에 참석차 한국인 기독교 신자 대표로 [[미국]]에 다녀왔다. [[1927년]] 다시 [[양산군]] [[원동공립보통학교]]의 훈도가 되었다가 [[1929년]]까지 재직하고 그만두었다. [[1927년]] [[6월 18일]]에는 과일 종자, 묘목 및 인삼 종자 묘목을 판매하는 주식회사 송도식산(松都殖産)의 설립에 참여하여 이사가 되었다.
 
[[파일:Yun Chi-ho's Family 02.png|thumb|right|160px|숙모 [[이범숙]]의 회갑연([[1936년]]), 다섯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윤영선, 넷째 줄 가운데, 색동옷을 입은 [[윤치소]]의 뒤측 오른편, 한진숙의 바로 뒷쪽열은 아버지 [[윤치호]], 둘째 줄 왼쪽에서 일곱번째는 6촌 동생 [[윤보선]], 셋째 줄 가운데는 당숙 [[윤치소]], 그 옆은 종조모 [[한진숙]], 넷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는 당숙모 [[이범숙]], 다섯째 줄 오른쪽 끝은 당숙 [[윤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