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홍예진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홍예진 (토론 | 기여)
태그: m 모바일 웹
19번째 줄:
== 생애 ==
=== 즉위 이전 ===
[[무휼|대무신왕]]은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로 다물후 [[송양]]의 딸 [[송씨]]의 소생이다. [[유리명왕]]은 6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첫째인 도절(都切)은 요절하였고, 둘째 [[해명]](解明)은 황룡국(黃龍國)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다. 그리하여 셋째인 [[무휼]]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후한서에 의하면 주몽의 아들 여달, 여달의 아들 여율, 여율의 아들 막래가 왕위를 계승했고 막래는 [[부여]]를 정벌하였으며 막래의 후손 궁에게까지 이어졌다 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대무신왕의 동생 고추대가 재사의 아들 궁이 대무신왕의 아들 [[모본왕]]을 대신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한다. 그러나 후한서의 기록대로 한다면 [[태조대왕]]은 대무신왕의 후손이 된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광개토대왕이 [[주몽]]-유류왕([[유리명왕]])-대주류왕을 이어 17대손이라 하여 [[광개토대왕]]의 직계 조상이라 기록했다.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한국의 역사가 [[신채호]]는 [[태조대왕]]을 대무신왕의 3대손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