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약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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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추가, 위문사 방문기록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하여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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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1579년]]
|출생지=
|사망지= 쌍령부산 좌수영지
|사망일= [[1643년]]
|사망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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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1605년]] 무과에 급제
|직업= 무관, 군인
|경력= 비변사낭청, 평산부사, 밀양부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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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선씨 시조 선윤지의 10세손이다.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백종(伯宗). 퇴휴당(退休堂)윤지(允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부사(府使) 의문(義問)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631년1630년(인조 98) 비변사낭청(備邊司郎廳)으로 있을 때,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였다고 추천되어 국서(國書)를 가지고 청나라 심양(瀋陽)에 사행(使行)하였다. 이때 숭명배청(崇明排淸)의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하고 외국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하여 돌아와서 품계가 승진되었다.
 
이와 함께, 금편(金鞭 : 금으로 도금한 말의 채찍)·초구(貂裘 : 담비의 모피로 만든 갑옷)·옥배(玉盃) 등을 하사받았다. 뒤에 평산부사·,밀양부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지내다 보성의임지에서 오충사(五忠祠)에사망하였다. 제향되었다.
 
1830년년(순조 30년) 오충사 사액과 함께 보성의 오충사(五忠祠)에 제향되었으며, 1862년 (철종13년) 병조참판, 1873년(고종10년)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다.
 
== 평가 ==
== 저서 ==
심양일기(瀋陽日記) : 1630년 4월 3일부터 5월 23일까지 위문사로서의 일기로 당시 하북(河北)과 심양(瀋陽)의 동향을 알려주는 기록으로 병자호란전의 중국과 조선정세를 알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심양일기는 중국『요해총서(遼海叢書)』 권52, 심양일기(瀋陽日記), 중국『총서집성(叢書集成)』 속집(續集)의 제280집, 심양일기(瀋陽日記), 1802년 『보성선씨 오현 행적(寶城宣氏五賢行蹟)』, 수사공심양사행일기(水使公入使瀋陽日記), 1844년 『보성선씨 오세 충의록(寶城宣氏五世忠義錄)』, 수사공심양일기(水使公瀋陽日記)에 영인되었다.
 
최근 학술논문인 남은경, 선약해의 『심양일기』 : 병자호란 전 조선 무신의 후금에 대한 정탐 일기(2009년) , 심양사행일기<선약해 원저/신해진 편역> (2013)등으로 가치에 대하여 재조명 받고 있다.
 
[[분류:조선의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