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 (태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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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llang|th|น่าน}})는 [[타이]] 북부에 있는 주(창왓)의 하나이다. [[우따라딧 주]], [[프래 주]], [[파야우 주]]와 인접한다. 북쪽과 동쪽은 [[라오스]]의 [[사이냐불리 주]]와 접한다.
 
== 지리 ==
주는 삼림으로 덮인 산에 둘러싸인 [[난 강]]의 외딴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현내 최고봉의 산은 [[푸아 군]]의 도아푸카 산(해발 2079m)으로, [[난 (타이)|난]]의 북동쪽,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에 위치한다.
 
== 역사 ==
난은 외딴 곳이었기 때문에 독립된 왕국이었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적었다. 믕푸아를 중심으로 한 최초의 왕국이 13세기 후반에 세워졌다. 통치자인 푸카 왕조는 [[비엔티안]]의 설립자와 관계가 있었지만 동쪽과 서쪽보다는 남쪽으로의 접근이 쉬웠기 때문에 [[수코타이 왕국]]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14세기에 수도는 현재의 난으로 이전되었다.
 
15세기에 수코타이 왕조가 쇠퇴하면서 [[란나타이 왕국]]의 속국이 되었다. 1443년에 난의 깬타오 왕은 이웃한 파야오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고 거짓으로 베트남의 군대가 난을 공격해왔다며 [[띠로까라즈]]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깬타오는 파야오의 왕을 죽였으나 띠로카라즈의 군대는 난을 공격해 1449년에 점령하였다.
 
란나타이가 버마족이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난은 몇 차례 독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였고 결국 1714년에 버마족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1788년에 버마족의 지배자는 철수하였지만 난은 새로운 시암의 지배자를 받아들여야 했다. 1893년의 [[파크남 위기]] 후에 시암은 난 동부의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어야만 했다.
 
난은 시암의 지배자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을 유지했지만 1931년에 완전히 타이에 통합되어 그 주가 되었다.
 
1980년대 초 이전까지 타이 인민해방군(PLAT)와 같은 무장 집단의 게릴라 활동이 주의 큰 문제였다. 이들은 주로 밤중에 건설중인 고속도로를 파괴했다. 군대의 도움과 정치의 안정화로 주의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 인구 ==
인구의 10.5%가 산악소수민족이다.
 
== 행정 구역 ==
난에는 15개의 [[암프]](군)와 더 세부 행정구역인 99개의 [[땀본]] 그리고 848개의 [[무반]]이 있다.
 
[[파일:Amphoe Nan.png|150px|right]]
|}
 
{{commons category위키공용분류|Nan, Thailand}}
 
{{타이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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