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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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탑스타 이은하는 영화계에 발을 디뎠으며 처음으로 영화 《날마다 허물을 벗는 꽃뱀》이라는 성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인영화에 출연하는데 꺼려했던 아버지 이배영은 당시 국민배우 [[이대근]]의 설득으로 이은하의 영화 출연을 허락했었다.
 
1970년대부터 허스키한 목소리와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당대 최고의 댄스 팝 가수로 각광받았던 이은하는 라이벌로 불리던 [[혜은이]]와 함께 경쟁하면서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1986년]], 이은하가 본인의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시련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아내어 작사하고 고인이 된 [[장덕]]이 작곡한작곡하고 이은하의 백밴드 이자 노래의 주인공인 남자가 베이시스트로 있던 <호랑이>라는 밴드가 반주하고 장덕이 코러스를 넣어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은하 작사/장덕 작곡)이라는 서정적인 사랑의 노래를 불러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1989년]], [[전영록]]이 작사/작곡한〈 돌이키지마〉(전영록 작사/작곡) 가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곡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은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는 10대 가수상을 9년 연속으로 수상한 이례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에는 [[콘서트]]나 [[뮤지컬]]을 하기도 했다. 이은하는 지난 [[2007년]]에 가수로 복귀하였고 그 해 [[서울가정법원]]에 호적정정허가신청서를 냈으며 자신의 실제 생년을 주민등록상으로 [[1958년]]에서 [[1961년]]으로 정정되었다. [[2012년]]에는 5년 만에 새롭게 [[재즈]]분야의 음악으로 전향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