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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독재자 박정희를 처단하였다고는 하였으나, 권력 암투 과정에서 김재규가 [[차지철]]에 밀리는 상황이었고 이에 김재규가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김재규는 [[10월 유신]] 때 부하들도 눈치를 챌 정도로 박정희에게는 적대적인 반면 민주화에는 큰 열망을 가진 의인이었다. 이 살인 사건을 7년간 준비해왔다는 설이 있고<ref name=autogenerated2>[[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cantell/vod/index.html?kind=text&progCode=1000459100078100000&pagesize=15&pagenum=2&cornerFlag=0&ContentTypeID=1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78회 2004년 04월 4일 방송</ref>,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추진과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사건]] 등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 정부가 김재규를 통해 박정희의 암살을 은밀히 조장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발전의 시발점이 된 10·26 사건==
 
10·26 사건은 박정희정부를 종식시켜서 대한민국역사는 물론 한국역사상 가장 이롭게 전개되던 암살이다.
 
비록 신군부가 집권하여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서 1987년으로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되기 전까지 민주주의가 8년이나 지연되었으나 박정희가 암살되어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 사건의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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