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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크리에이터의 전신은 1982년에 결성된 스쿨 밴드 'Tyrant'이다. 당시 멤버는 밀란트 "밀레" 페트로차(보컬, 기타), 롭 피오레티(베이스), 위르겐 "벤토르" 라일(드럼) 이었다. 이듬해 밴드 이름을 'Tormentor'로 변경하고 인디 레이블 노이즈 레코드(Noise Record)과 계약을 맺은 후 첫 번째 데모 'Blitzkrieg'을 발매한다. 이 앨범과 1984년에 발매한 두 번째 데모 'End of the World'에서는 [[슬레이어]]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며, 인디 레이블 Noise Record에서 발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 이름을 크리에이터(Kreator)로 변경하고, 1985년 정식 데뷔 앨범 'Endless Pain'을 발매한다. 이 앨범 역시 슬레이어의 주로 영향이 많이 느껴지나, 데스, 블랙 메탈의 면모까지 확인할 수 있다. 녹음 작업에는 총 10일이 소요되었다.
예상외로 판매실적이 호조를 보이자 레이블은 두 번째 앨범 'Pleasure to Kill'을 내도록 강요한다.
이 앨범에는 [[슬레이어]]의 'Hell Awaits', 'Possessed'의 'Seven Churches'의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또한, [[헬로윈]], 보이보드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해리스 존스가 지휘를 담당했으며, 이 앨범은 스래쉬 메탈의 명반 대열에 포함된다. 또한, 이 전까지는 항상 단발성 공연만 했으나, 새로운 기타리스트 외르크 "트리체" 트레비아토프스키를 영입하며 [[디스트럭션]]. [[레이지]]와 투어를 한다.
그리고 연말 EP앨범 'Flag of Hate'를 발매한다.
1987년에 발매한 3집 앨범 'Terrible Certainty'는 밴드 고유의 정체성이 돋보이는 앨범이며, 이 앨범으로 인기를 한층 더 높였다.
유럽에서는 [[셀틱 프로스트]], 북미에서는 D.R.I와 함께 투어 길에 오른다. 1988년에는 북미지역의 판매와 투어를 담당하게 되는 메이저 음반사 에픽 레코즈([[Epic Records]])와 계약한다.
1년 뒤 메가데스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랜디 번스와 함께 4집 'Extreme Aggression' 작업을 우선 베를린에서 먼저 시작하나, 어려움 때문에 결국 [[로스 엔젤레스]]에서 작업을 마무리한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촬영한 'Lied Betrayer'의 뮤직 비디오는[[MTV]]의 락 전문 프로그램 헤드뱅어스 볼(Headbangers Ball)에서 자주 방영되었다.
외르크는 레이븐과의 유럽 투어 이후에 밴드를 탈퇴하고, 밴드는 소돔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프랑크 "블랙파이어" 고스직을 영입한다.
그리고 [[수어사이덜 텐던시스]]와의 첫 번째 북미 헤드라이너 투어를 하게 된다.
같은 해 토마스 샤트 감독이 스래쉬 메탈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필름 'Thrash Altenessen'을 공개한다. 1990년에는 사바트, 코로너, 탱커드와 함께 노이즈 페스티벌에 오른다. 이는 비공산주의 국가 출신의 밴드들이 구 동독에서 한 최초의 공연이다. 7천 명 가량의 관중이 운집했으며, 이 공연은 "Extreme Aggression Tour 1989/1990"이란 타이틀의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추후 "At the Pulse of Kapitulation"로 DVD로 발매)
===1990년대===
1990년대 초 스래쉬 메탈 신은 변혁을 맞이한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가 스래쉬의 본질보다 상업성에 치중하는 반면, 크리에이터는 [[하드코어]]와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요소를 접목하며 실험을 해나간다. 하지만, 90년대의 앨범들은 대개 평단과 팬들의 의견이 엇갈리는데, 1992년에 발매한 'Renewal'은 [[세풀투라]]의 앨범을 담당했던 탐 모리스가 프로듀싱을 하였으나, 팬들의 반응과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평단에서는 대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는 이스라엘에서 촬영한다.
1993년에는 바이오해저드와 북미, 유럽 투어 길에 오르고, 투어 종료 후 밴드는 휴지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레이블을 노이즈에서 건 레코즈(Gun Records)로 옮긴다. Epic Records와의 재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르겐 라일과 롭 피오레티가 밴드를 탈퇴한 후, 크리스티안 "스피지" 기즐러와 드러머 조 칸젤로시가 밴드에 가입한다. 1995년에는 판테라와 머신 헤드의 영향을 받은 비교적 모던해진 성향인 7집 'Cause for Conflict'를 발매한다.
1997년 발매한 8집 'Outcast'는 톰 베르텔리와 위르겐 라일의 복귀작이나, 이번에도 평단과 팬들의 평가는 엇갈리게 된다. 앨범 발매 후 [[딤무보거]], [[크리시언]], 리히트호펜과 투어를 한다.
 
===2000년대===
2000년 들어 [[SPV]]와 계약을 체결한다. 동시에 톰 베테를리가 밴드를 탈퇴하고 전 기타리스트 사미 일리-시르니외가 다시 밴드로 복귀한다. 2001년에 발매한 10집 'Violent Revolution'은 예전 스타일에 멜로딕 데스메탈의 요소를 가미했다. 이 앨범은 평단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상당히 좋은 평을 받으며 다시 저먼 스래쉬의 선두주자로 복귀한다. 카니발 콥스와의 투어 후 2001년 가을 'Thrashback' 이라는 모토 하에 [[디스트럭션]], [[소돔 (밴드)]]과 투어를 가진다. 이 투어에서 세 밴드는 번갈아가며 헤드라이너를 맡는다. 투어 영상은 2003년 라이브 앨범 'Live Kreation'으로, 그리고 'Live Kreation: Revisioned Glory'라는 DVD로 발매된다. 그리고 같은 해 록 하드 페스티벌(Rock Hard Festival)에서 나일, 베이더, 아몬 아마스와 함께 북미 투어에 나선다. 투어를 마친 후 프로듀서 앤디 스닙의 지휘 하에 2005년 11집 'Enemy of God'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전작 'Violent Revolution'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페트로차는 한 인터뷰에서 조지 W.Bush와 오사마 빈 라덴에이 서로를 '신의 적'(Enemy of God)이라고 비방하는 모습에서 앨범 제목에 대한 영감을 얻았다고 밝혔다.
앨범 발매 후 [[다크 트랭퀼리티]], 엑토모프, 헤이트스피어와 유럽 투어를, 베이더, 프로 페인과 북아메리카 투어를 한다. (데스 앤젤은 투어를 취소). 그리고 2005년 6월 3일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페스티벌의 무대에 섰는데, 밴드는 이 무대에 오른 최초의 외국밴드가 되었다. 2006년 2월에는 [[네이팜 데스]], 언다잉, 어 퍼펙트 머더와 다시 미국 투어 길에 오른다. 그리고 여름에는 서머 브리즈(Summer Breeze) 등 다양한 유럽의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9년 1월 13일 12 집 'Hordes of Chaos' 을 발매하는데, 기존의 메탈 전문 프로듀서를 고용하지 않고, 기존보다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비메탈 계열 프로듀서인 모제스 슈나이더를 고용한다. 2010년 11월에는 [[엑소더스]], 데스 엔젤, 수어사이덜 엔젤스와 스래쉬 페스트 투어(Thrashfest Tour)에 참가해 2011년에는 투어 계획이 없으며, 이듬해인 2012년에 새 앨범을 발매한다고 발표한다.
 
 
==바깥 고리==
{{Commons위키공용과 and category분류|Sodom (band)}}
* {{공식 웹사이트|http://www.kreator-terrorzon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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