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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시는 송(宋)나라 때부터 중국은 물론 고려나 요(遼)나라 같은 이웃 나라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만큼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여 그의 시집 역시 송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줄곧 간행되어 왔으며, 이 가운데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도 아주 많다.
 
소동파(蘇東坡, 1036~1101)가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그러기에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세상의 학자들이 처음에는 과거시험에 필요한 문체를 익히느라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소동파 시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매년 과거의 방이 나붙은 뒤에 사람마다 금년에 또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고 여긴다”라고 했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는 오로지 만당(晩唐) 시만 익혔고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라고 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동생 김부철(金富轍)의 이름이 소동파(본명 軾)와 소철(蘇轍)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소동파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추앙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렇듯 우리의 1ㅂ!선조들은 소동파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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