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기요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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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이 우리 성 공략전에서 생긴 사건이다. [[오테몬]]을 공격한 [[후카마 마쓰다이라 가]](福釜松平家)인 숙부 [[마쓰다이라 지카모리|사쿄노스케 지카모리]](左京亮親盛)를 잃을 즈음에, 지원에 늦은 노부사다를 기요야스가 매도했다고 한다. 기요야스 자신은 그때 뿐인 질책이었을 것이지만, 질책을 당한 노부사다의 입장에서 본다면 원한을 계속 품어서 종가 찬탈의 기회를 노린다는 결의를 굳혔던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 모리야마모리야마의 구즈레 ===
미카와 통일의 기세를 탄 기요야스는 1만 여의 대군으로 오와리에 진군한다. [[1535년]]([[덴분]] 4년) 12월, 기요야스는 오와리에 침입해 [[오다 노부히데]]의 동생 [[오다 노부미쓰|노부미쓰]](信光)가 지키는 [[모리야마 성]]을 공격했다. 이 모리야마 싸움의 한가운데인 [[12월 29일]]([[음력 12월 5일]]), 기요야스는 오테몬 부근에서 돌연, 가신 [[아베 마사토요|아베 야시치로 마사토요]](阿部弥七郎正豊)에게 베어져 즉사했다. 이것을 '[[모리야마의 변]](森山崩れ)'라고 한다. 기요야스는 야시치로의 아버지인 사다요시와 오다가와의 내통을 의심하여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사망 당일 말들을 붙잡아 놓으라는 말을 야치시로가 아버지를 붙잡아 놓으라는 말로 오해하여 혼란한 틈을 타 뒤로 가서 기요야스의 오른쪽 어께부터 왼쪽 옆구리 까지 베었다고 한다. 야시치로가 이 즈음에 사용한 것이 센고(千子) [[무라마사]](村正)라고 전해진다.<ref>이후 무라마사라고 하는 칼은 '요도 무라마사'로 불리며 도쿠가와 가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불길한 칼로 여겨졌다.</ref> 향년 2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