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그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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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이르러 재계순위 7위까지 등극한 국제그룹의 명성은 1985년 전두환 정권의 부실기업 정리와 함께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국제그룹의 표면적인 해체 이유는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 등의 이유가 있으나, 그룹의 해체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비화가 있으며 정치자금이 타 기업들에 비해 적다는 등의 이유로 당시 전두환 정권에게 밉보여서미움을 사 해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전두환]] 정부 시절 발생했던 [[1985년]] 정관계 로비 의혹사건에 휘말리고,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출처|날짜=2013-6-10|그룹이 총 8번 해체되는 일이 있었다.}}
 
정부의 강제 그룹해체 이후 양정모 회장은 그룹복원을 위해 소송을 내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으나, 1993년 7월 정부에 의한 국제그룹의 강제해체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명예회복으로 위안을 삼았을 뿐,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든 주식 지분과 계열사가 분해되어대부분 정리되어 여러 타 회사들에게 합병 및 흡수되었기 때문에 그룹복원은 현실적으로 힘들게 되었다.
국제그룹의 표면적인 해체 이유는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 등의 이유가 있으나, 그룹의 해체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비화가 있으며 정치자금이 타 기업들에 비해 적다는 등의 이유로 당시 전두환 정권에게 밉보여서 해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로도 이 그룹 회장 [[양정모 (1921년)|양정모]]는 [[[1997년]] 국제그룹 재창건을 위해 노력했으나 같은해 발생한 [[IMF 금융위기]]와 다시 불거진 정관계 로비 의혹사건으로 인해 좌절했고 [[2002년]] 다시 국제그룹의 재창건을 위해 움직였으나, 이듬 해 발생한 신용불량자 100만명 절정사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2007년]] 또 다시 창건하려고 하였으나 이듬해인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그룹은 끝내 재건하지 못한 채 결국 [[2009년]] 봄 세상을 뜨고 만다.
정부의 강제 그룹해체 이후 양정모 회장은 그룹복원을 위해 소송을 내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으나, 1993년 7월 정부에 의한 국제그룹의 강제해체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명예회복으로 위안을 삼았을 뿐,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든 주식 지분과 계열사가 분해되어 여러 타 회사들에게 합병 및 흡수되었기 때문에 그룹복원은 현실적으로 힘들게 되었다.
 
당시 이 그룹의 회장 [[양정모 (1921년)|양정모]]는 [[2003년]] 경 국제그룹의 재창건을 위해 노력했으나, 그 해 발생한 신용불량자 100만명 절정사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울러, [[2007년]] 경 또 다시 창건하려고 하였으나 이듬해인 [[2008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2009년]] 봄 세상을 뜨고 말았다.
 
== 계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