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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곽예'''(郭預, 1232년 ~ 1286년)는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곽왕부(郭王府)이며, 자는 선갑(先甲),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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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년(충렬왕 8)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임명되어서는, 전법판서(典法判書) 김서(金㥠)의 지위가 자기보다 위라는 이유로 사양한 후 그를 임명해 달라고 건의하자 사람들은 그의 겸양을 칭찬하였다. 마침 김서가 부친상을 당해 다시 곽예가 과거를 주관하게 되었는데, 합격한 자 중에 명사(名士)로 알려진 사람이 많았다. 이후 좌승지(左承旨)·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문한학사(文翰學士)로 승진하고, [[1286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감찰대부(監察大夫)로 올랐으며,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가는 도중에 죽으니 나이 쉰다섯이었다.
 
그는 사람됨이 담박하고 곧았으며 겸손하고 안락해 높은 지위에 오른 뒤에도 선비 때와 똑 같이똑같이 행동했다. 글을 잘 짓고 글씨는 가늘면서도 굳세어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 서체를 본받는 바람에 그것이 완연히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원(翰院) 재임시 비가 올 때마다 맨발로 우산을 들고 혼자 용화지(龍化池)로 가서 연꽃을 완상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의 풍치(風致)를 고상하게 여겨 그 일을 시로 많이 읊었다.<ref>[http://db.history.go.kr/id/kr_106_0010_0030 『고려사』 권106, 열전19]</ref>
 
==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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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고려의 문신]]
[[분류:고려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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