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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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께서 지킨 닛산1월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해오던 동방교회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155년경 로마교회 지도자 아니케터스와 동방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캅은 이 논쟁에서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폴리캅은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것은 예수님때로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으나 양편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2차 유월절논쟁[유세비우스 교회사],[[교회사 초대편]]
이후197년경 당시 로마교회 감독 빅터는 유월절(닛산 1월 14일 저녁)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 첫 일요일에 성찬식을 하는 [[도미닉의 규칙]] 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가지 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 동방교회을 제외한 각지에서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다.
동방 에베소감독 폴니크라테스는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어 동방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여러순교자들이 닛산1월14일에 유월절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에 따라 지키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에 빅터는 동방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제거하려 했으나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파문을 취소했다.
 
이 분쟁이 4세기에 다시 점화되어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325년 [[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종교회의]]에서 성찬식을 춘분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해졌다[간추린 교회사]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