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라스페 폰 튀링겐 방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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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6년]] [[8월]] 하인리히 라스페는 [[헤세]] 남부 니더에서 [[콘라트 4세]]와 교전하였다. 주교들은 프랑크푸르트 공회와 뉘른베르크 공회를 열어 양자를 소환했지만 불응하고 계속 교전했으며 1246년 8월 5일 프랑크푸르트 근처에서 [[콘라트 4세]]를 꺾었다. 그러나 울름과 이틀링겐 지역이 함락되면서 패하였다. 교황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지만 전투 중 치명상을 입은 라스페는 [[바르트부르크]]에서 퇴각했다가, [[1247년]] [[2월]] [[튀링겐]] [[백작령]]의 [[바르트부르크]] 근처 [[아이제나흐]]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아이제나흐의 [[성 카트린느 수도원]]의 자신의 부모 곁에 안치되었다.
 
== 가족 관계 ==
세 번 결혼하였으나 자녀가 없었으므로 그의 집안은 단절되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