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1983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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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李柄奎,<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759 |날짜=2009-03-10 }}</ref> [[1983년]] [[10월 9일]] - )는 [[KBO 리그]] [[LG 트윈스]]의 [[외야수]]이다.
'''이병규'''(李柄奎,
<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759 |날짜=2009-03-10 }}</ref> [[1983년]] [[10월 9일]] - )는 [[KBO 리그]] [[LG 트윈스]]의 [[외야수]]이다.
 
==[[ LG 트윈스]] 시절==
[[2006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주로 2군에서 머물렀고 데뷔 첫 해 1군 7경기에 나왔다.
[[2009년]] [[8월 8일]]에 [[투수]] [[서승화]]가 2군에서 일으킨 구타 사건의 피해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서승화]]로 예고된 [[사직야구장|사직]]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의 선발 [[투수]]가 [[박지철]]로 교체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39&oid=032&aid=0002025836 이대호 연타석포 롯데, 5연패 탈출 4위로] - 경향신문</ref>
[[2010년]] [[박종훈 (1959년)|박종훈]] 감독이 부임한 후 [[오지환]]과 함께 많은 기회를 잡아 1군 103경기에 출장하여 12홈런, 3할 타율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4160031 '작뱅' 이병규, 경기력으로 내뿜은 진가] - OSEN</ref> [[1974년]]생 [[외야수]]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분되는 애칭으로 "작은 이병규"라는 뜻인 "작뱅"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입단 때 원래 [[1루수]]였으나 [[2010년]]부터 [[외야수]]를 겸하였다.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11년]]에는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후반기에 복귀하여 1군 33경기에 출장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95995 LG는 왜 최희섭에 관심이 없을까?] - OSEN</ref>
[[2012년]]부터 다시 본업인 [[1루수]]로 [[최동수 (야구 선수)|최동수]]와 번갈아 출장했다다출장했다. [[2012년]] 시즌이 끝난 후 10월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하였으며 수비는 좌익과 1루를 주로 보고 있다. 넥센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김기태 감독이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2013년]] 2012년 10월에 무릎 수술 후 2013년에는 초반에 복귀하지 못하고 2군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반기에 복귀하였다. 실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하였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2014년]] [[LG 트윈스]] 감독이 [[양상문]] 감독으로 바뀌면서 세대 교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팀이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16경기 출장하여 360타수 110안타 16홈런 87타점 타율 0.306(3할6리)로 커리어하이 성적을 냈다. 2014년부터 엘지 트윈스의 4번타자를 주로 맡게되었다. 특유의 중장거리포와 깔끔하고 아름다운 스윙을 갖고있어서 타격에서의 재능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