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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5년]] 위 문후가 위씨종주가 되면서 내정에는 [[이극]](李克), [[서문표]](西門豹)와 군사에는 [[오기]](吳起), [[악양]](樂羊)등 신하들을 등용하여 주변국보다 위나라의 국력이 강성하게 되어 칠웅 중 최강 국가가 됐다. 그리고 [[기원전 403년]] 위나라는 한나라, 조나라와 함께 주나라 왕이 제후로 임명되었고, 전국시대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396년]] 문후가 사망하였고, 아들 [[위 무후]]가 위나라 군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싫어하던 하서태수(河西太守) 오기가 초나라(楚)로 망명한다. 그러나 무후는 뛰어난 군주라서 오기가 없어도 국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나라 주변에는 무혈입성으로 위나라를 확장확장할 할수 없는 약한 세력이 없었고, 위나라는 강력한 나라만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쟁이 끊임 없이 계속되었고,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370년]] 무후가 사망하였고, 아들 [[위 혜왕]]이 즉위하였다. 그가 다스릴때는 제나라의 장수 [[손빈]](孫臏)이 공격해오자, 태자 신(太子申)과 장수 [[방연]](龐涓)을 보내었고, [[마릉 전투]]에서 위나라군은 제나라군에게 대패를 하였다. 그리고 [[공숙좌]](公叔座)의 건의로 내친 상앙이 진나라(秦)로 갔고, 진나라는 상앙을 등용하여, 상앙의 변법을 시행하여 진나라는 국력을 강력해졌다. [[기원전 340년]] 상앙이 이끄는 진나라군에게 대패하여 황하 이서 지역을 잃었고, 진나라를 두려워하며, 수도를 안읍(安邑)에서 동쪽 지역인 대량(大梁, 현재의 [[카이펑]](開封))으로 천도하였다. 대랑으로 천도를 한 이후는 별칭인 양나라(梁)로 대신 불렸다. 여기서 문후가 패자가 된 이후에 유지하였던 패자의 자리에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