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명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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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zh|t=鄭和|p=Zhèng Hé|s=郑和|h=정허}}, [[1371년]]~[[1434년]], 본명: '''마삼보'''(馬三寶))는 중국 [[명나라]] 왕조 시대의 장군(將軍)이자 [[환관]], [[무신|무관]](武官), 제독(提督), [[전략|전략가]], 탐험가, [[외교관]], [[정치가]]이다. [[영락제]](永樂帝)의 심복으로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해에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성씨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중국식 한자인 마(馬)씨이고 이름은 삼보(三保)였다.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太監)이 되었기에 중국에서는 삼보태감(三保太監 혹은 三寶太監)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하였고, 가장 멀리까지 도달한 지점은 [[아프리카]] 동해안의 [[말린디]]<ref>(현재 [[케냐]]의 [[말린디]]</ref>)였다. 그가 지휘한 함대에서 가장 큰 배인 보선(寶船)은 전체 길이가 120미터가 넘는 대형 선박이었다고 한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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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는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쪽 바다에 대한 대원정을 준비하여 [[1405년]] 6월 제1차 원정을 떠났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전체 길이가 44장(丈; 약 137미터), 폭 18장(약 56미터)에 이르는 대형 선박이 포함된 함선 62척에 총승무원 2만 7,800명이 탑승했다. 훗날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가 120톤급 3척에 총 승무원 170명이었고, 지구 한 바퀴 원정을 기획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콜럼버스]]의 함대도 250톤급 3척, 승무원 88명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초거대 규모의 함대였다.
 
[[쑤저우|소주]](蘇州)에서 출발한 함대는 [[참파]]<ref>지금의 베트남 중부</ref>와 수마트라를 거쳐 팔렘방, 말라카, 실론<ref>지금의 스리랑카</ref> 등의 항로를 거쳐 [[1407년]] 초쯤 인도 캘리컷(Calicut)<ref>, 지금의 [[코지코드]]</ref>)에 도달했다. 함대의 목적은 항해하여 도착하는 나라에 대하여 명나라에게 조공을 요구하는 일과 남방 지역의 문물 등을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 진조의(陳祖義)라는 중국인을 붙잡아 일시 귀국하였다. 이 항해를 통해 명나라와 교류가 없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1407년]] 9월 귀국한 정화는 얼마 뒤 재출발 명령을 받아 연말에 제2차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항로는 전과 같았지만 이번에는 시암(타이)과 자바 섬 등을 거쳐 캘리컷에 도착했다. 귀환 중 스리랑카 섬 [[갈 (도시)]]이란 곳에 [[중국어]], [[타밀어]](현지어), [[페르시아어]](당시 국제어) 등 3개 국어로 쓰여진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