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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본부인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정치인)|김정숙]]의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일찍 죽었고, 류경수는 다시 [[황순희]]와 재혼하였다.
 
=== 항일 빨치산 경력 ===
[[1932년]]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하여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6사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하였다.<ref><조선향토대백과> 평화문제연구소 2006</ref> [[1933년]] [[9월]] 소왕청 마촌에서 [[김일성]]을 만나 어린 혁명가라며 칭송을 받고, 그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 김일성의 측근이 된 그는 《그 품 떠나 못살아》라는 시를 직접 짓기도 했다.
 
그 품 떠나 나는 못살아}}
 
[[1937년]] [[8월]] [[무송 현]] [[묘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궤멸시켰다. 묘령전투에 일본군 70여명의 적을 사살하고 400여명을 포로로 하였으며 40여명의 일본군 병사의 귀순을 받아들여 유격대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박격포 1문, 중기 1문, 경기관총 3정, 보총 200여정을 비롯하여 포대로 3,000여 마대의 밀가루 등 전리품을 획득했다. 그밖에 [[장백 현]] 간삼봉에서도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하였다. [[1938년 동북항일련군에 배속, 항일련군 중 [[김일성]]이 지휘하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1영 제1련대 제1중대 제1배장에 임명되었다. [[1939년]] 여름 [[연길현]] 천보산전투, 돈화현 요차전투에서 일본 관동군과 싸워 승전하였고, 그해 가을에 있은 안도현 한총구전투에서도 관동군 소부대를 궤멸시켰다.
 
==== 소련 88려단 활동 ====
[[1940년]]에는 만주 동만항일련군 2유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전사한 김철운의 묘에 강위룡과 함께 남긴 편지가 [[2015년]] [[11월]]에 발견되기도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1996 김철운항일투사 묘에 묻은 편지, 60년만에 발견]</ref>
 
이후1940년 말 [[연해주]]의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소련]]으로 건너가 [[소련군]] 간부학교에서 정식 군사훈련을 받고, [[소련군]] [[소위]]로 임관되어 [[제88 국제극동여단]]의 제1대대 1중대의 부소대장과 1중대 1소대장을 역임했다. [[1942년]] [[동북항일련군]] 교도려단에 배속 후 정찰대원에 임명되고, [[소련]] 인민군 제88특별려단에 편입되자 그는 88려단 교도대대 정찰대원이 되었다. 해방 후 38도선 이북으로 귀국하였다.
 
=== 해방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