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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땅크여단 35땅크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제312호 전차가 가장 먼저 [[서울특별시]]에 진입, 312호 전차 포장 고현빈이 당시 [[조선총독부 청사와 관사|중앙청]]건물에 [[인공기]]를 계양하였다. 류경수는 예하 연대를 통솔하여 [[서울특별시]]를 점령하였다. [[6월 28일]]에는 [[서울대학교]] 대학 병원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있던 대한민국 국방군 부상병들과 우익 인사들을 골라 사살하였다.
 
이에 따라 부대는 [[1950년]] [[7월 5일]]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수상에 의해 '서울' 명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사단으로 증편되었다. 그는 바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7월 18일]] [[평택]]에서는 미 공군의 F-80기의 집중 공격으로 전차 38량과 자주포 9량, 차량 118량이 파손되었다. 그러나 평택을 지나 [[대전]]을 공략하여 대전시내를 함락시켰다. 이후 [[대전]]에서의 전투 성과를 기려 [[1950년]] [[7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54호에 의하여 군사 명예부대 칭호인 '근위대' 칭호를 수여받고 "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으로 승격된다. [[1950년]] [[8월]]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되였다. [[8월 13일]]에는 교체되어 조선인민군 제3사단 사단장이 되어 [[대구]]로 갔다. [[1950년]] [[9월]]에는 [[미국 군]]에 포위되어 식량과 비상미가 떨어진 상태에서 14일간 버텼으며, 당시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2001년 5월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89호에 따라 한국전쟁 당시 지휘관이었던 류경수의 공적을 기려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으로 최종 명명되었다.
 
[[8월 13일]]에는 교체되어 조선인민군 제3사단 사단장이 되어 [[대구]]로 갔다. [[1950년]] [[9월]]에는 [[미국 군]]에 포위되어 식량과 비상미가 떨어진 상태에서 14일간 버텼으며, 당시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2001년 5월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89호에 따라 한국전쟁 당시 지휘관이었던 류경수의 공적을 기려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으로 최종 명명되었다.
 
=== 생애 후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