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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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참전 ====
[[1950년]] [[6월 25일]] 새벽, 인민군 제105전차려단은 류경수 려단장의 지휘 아래에 [[조선인민군]] 제1군단 휘하 제1, 3, 4, 6사단에 제203, 109, 107전차연대와 제206연대가 배속되어 진격하였다. 그는 100호 전차를 타고 [[동두천]]과 [[의정부]]를 통해 내려왔다. 이때 동두천에 주둔중이던 [[대한민국 국군]] 소규모 부대를 격파한 뒤 그대로 직진, [[의정부]]에 주둔중이던 [[대한민국 국군]] 7사단에 저지당했으나, 인민군 3사단 18연대의 지원으로 의정부를 함락시키고 3일만에 서울에 입성하였다.
이에 따라 부대는 [[1950년]] [[7월 5일]]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수상에 의해 '서울' 명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사단으로 증편되었다. 그는 바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7월 18일]] [[평택]]에서는 미 공군의 F-80기의 집중 공격으로 전차 38량과 자주포 9량, 차량 118량이 파손되었다. 그러나 평택을 지나 [[대전]]을 공략하여 대전시내를 함락시켰다. 이후 [[대전]]에서의 전투 성과를 기려 [[1950년]] [[7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54호에 의하여 군사 명예부대 칭호인 '근위대' 칭호를 수여받고 "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으로 승격된다. [[1950년]] [[8월]]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되였다. [[8월 13일]]에는 교체되어 조선인민군 제3사단 사단장이 되어 [[대구]]로 갔다. [[1950년]] [[9월]]에는 [[미국 군]]에 포위되어 식량과 비상미가 떨어진 상태에서 14일간 버텼으며, 당시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1951년]] [[1월]] [[조선인민군]] 제3군단 군단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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