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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계 배경이나 유년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태천소학교를 다녔다. 유년 시절 고향에서 결혼한 본처가 있었지만 그가 중국으로 간 뒤 연락이 끊겨 헤어지고, 후일 [[중국]] 여성 [[왕옥환]]과 재혼하였다. 왕옥환은 한때 남편의 사후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1990년]]대에 [[북조선]]으로 가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 중학교 수학과 망명 ====
[[1918년]] [[태천소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시|정주]]의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당시 교장으로 교사를 겸하던 [[조만식]] 외에도 설립자 [[이승훈]], [[페허]]지의 동인이며 상징파 시인인 [[김억]] 등이 교사였고, 같은 학년 동급생으로는 [[함석헌]]이 있었으며, 2년 선배로 [[대한민국]]의 반공주의 목사 [[한경직]]이 재학 중에 있었다. 오산중학교 당시 교사들 중 한 명이었던 [[조만식]]은 그를 각별히 아꼈다. 그러나 사상 노선이 달라짐으로써 뒷날 정적으로 돌변한다. 그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1919년]] [[3월 1일]] 그는 [[3.1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투옥, 그해 말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