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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
==== 귀국과 광복 직후 ====
[[1945년]] [[8월]] 광복 후 [[평안남도]] 자치준비위원회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는 [[김일성]], [[김책]]과는 별도로 육로를 통해 [[만주]]를 거쳐 들어왔다. [[9월]] 귀국하여 그는 [[11월 3일]] [[조선민주당]]의 조직에 참여하여<ref name="nate1">[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45126&v=44 '조선민주당' - 네이트 백과사전<!-- 봇이 따온 제목 -->]</ref> [[오산중학교]] 시절 스승이었던 [[조만식]]과 함께 [[조선사회민주당]]을 창당하고 [[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조선민주당]] 중앙당 부당수에 선출되었다.<ref name="nate1"/> 독자적인 세력 없이 [[소련]]군정의 후원 밖에 믿을 수 없던 [[김일성]]은 [[연안파]]가 주축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을 적당히 조정하여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자기 사람인 최용건과 [[김책]]을 각각 서기장과 정치부장으로 추천했다.<ref>정연선, 《한국정치특강》 (숭실대학교출판부, 2008) 437페이지</ref> [[조만식]]의 주변에서는 최용건을 [[공산당]]의 프락치라며 받아들이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조만식]]은 이를 물리치고 최용건이 [[1920년대]] [[상하이]]에서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한 점을 들어 그를 받아들였다.
 
최용건은 [[조선민주당]]이 창당된 후, 만주, 중국 등지에서 귀국한 [[공산주의자]] 및 [[중국공산당]]원이었던 한인들을 대거 [[조선민주당]]에 입당시키고 서서히 당의 여론을 장악해나갔다. 그의 부당수 선출 배경에는 [[김일성]]이 정치적인 복선을 가지고 잠입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f name="nate1"/> 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조선민주당]]을 와해·장악할 목적으로 김일성의 천거를 받아 조선민주당의 부위원장과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겸임시켰다<ref name="공작1"/>'는 것이다. 최용건은 [[1945년]] [[12월]]부터 [[1946년]] [[1월]]까지 비밀리에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상무 집행위원회 위원'이었다.<ref>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편, 《북한현대사 1:한울아카데미 677》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한울, 2004) 48 페이지</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