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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일성 수령 최용건 김책 김일 강건.jpg|thumb|200px|평양에서 생산된 최초의 따발총을 수여받은 최용건, [[김책]], [[김일 (1910년)|김일]], [[강건]]]]
{{본문|한국 전쟁}}
한국전쟁이 발발하기전 그는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자 민족보위상을 맡고 있었는데 일설에는 최용건은 [[김두봉]], [[김원봉]], [[박헌영]] 등과 함께 한국전쟁에 적극 반대하였다 한다. 내각 민족 보위상이자 조선 인민군 총사령관인 최용건은 미군의 개입 가능성을 들어 전쟁을 끝까지 반대했다.<ref>녹색자치신문사, 《남북 새 시대》 (한국정치리서치, 2000) 419페이지</ref>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참전, [[6월 29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서울특별시]]를 장악하고, [[6월 29일]] [[경무대]]에 입성하였다.
 
[[6월 29일]] [[한국전쟁]] 직후 서울지구방어사령부를 구성하고 서울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지만, 그해 [[9월 28일]] 서울을 [[미군]]에게 잃었다.<ref name="seoil">유성철, 이상조, 《증언 김일성을 말한다: 유성철․이상조가 밝힌 북한정권의 실정》 (한국일보사, 1991) pp. 98</ref> [[8월]] 말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지자 김일성은 최용건을 내세워 서해안 방어사령부를 설치하고 편성된 지 1개월 밖에 안 된 제18사단 등을 [[인천]]과 [[서울]]지역에 배치하였다.<ref name="nunu84">이재룡, 《누가 통일전쟁을 일으켰는가》(새로봄, 2006) 84페이지</ref> [[8월 28일]]에는 [[인천]]지역 방어계획을 마련하라는 상륙저지 방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위해 정규군은 물론 일반 인민들까지 총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ref name="nunu84"/> 그는 [[인천 상륙 작전]]의 정보를 사전 입수하였고, [[8월 28일]]부터는 인천지구 방어사령관을 겸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