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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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에 비로소 대도시의 지위를 되찾고, 다시 익주에서 성도로 불린다. 성도는 [[낙양]], [[금릉]], [[장안]]에 버금가는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한다. 유명한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성도에서 삶의 일부를 보내기도 했다. [[안사의 난]] 때에는 [[당현종|현종]]이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난]] 때는 [[서나라]]의 수도이기도수도(大西京, 다시징, 대서경)이기도 하였던 [[청두]]는 [[중국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최후까지 점유하던 도시가 바로 청두이다. [[1949년]] [[12월 10일]] 본토인 [[중국 대륙]] 전체가 [[중국 공산당]]에 장악될 때까지 [[장제스]]는 안간힘을 다하여 청두 방어를 지휘했으나, 결국 [[중국 국민당]]은 [[중국 대륙]]에서 [[중화민국]] 관할 영역을 모두 상실하였다.
 
== 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