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197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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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상위 싱글A, [[1999년]] 더블A, [[2000년]] 트리플A를 밟아나간 뒤 [[200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에 데뷔한 김선우는 [[2002년]] 시즌 중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트레이드 상대는 전년도에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던 강타자 클리프 플로이드였는데,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김선우와 함께 우완 유망주 마이너 리거였던 [[송승준]]을 보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몬트리올]]에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한 김선우는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2005년]] [[워싱턴 D.C.|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바뀐 팀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그 해 [[8월 5일]]에 지명 할당되었고, [[콜로라도 로키스]]에 이적하였다. 콜로라도 시절이었던 [[2005년]] [[9월 24일]], 김선우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데뷔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낸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로 등판한 김선우는 [[배리 본즈]], 모이세스 알루, 오마 비즈켈 등이 포진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샌프란시스코]] 타선을 3안타 1볼넷으로 꽁꽁 묶으며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쿠어스 필드]] 야구장에서 완봉승을 따 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병역 문제를 해결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다시 부진에 빠진 김선우는 그 해 [[9월 5일]] [[신시내티 레즈]]에 트레이드되었고, 시즌 후 [[신시내티]]에서 방출당했다. [[2007년]] [[1월 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으나 더 이상 메이저에 진입하지 못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8&article_id=0003164950 장윤호의 체인지업 - '절친' 김선우와 서재응의 추운 겨울] - 머니투데이</ref> 결국 김선우는 [[2008년]] 1월에 자신을 처음에 지명하였고 끊임없이 작업을 걸어 오던 [[두산 베어스]]와 계약금 9억 원, 연봉 4억 원, 인센티브 2억 원 등 총 15억 원에 계약을 맺고 [[미국]] 생활을 전격 청산한 후, [[대한민국]]으로 복귀했다. 전년도에 제시했던 4년 40억 원 이상의 대우보다 큰 폭으로 줄었지만 적은 금액은 아니었으며, [[KBO 리그]] 복귀 당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118경기 등판에 통산 13승을 기록하였다.
 
=== 한국[[KBO 리그]] 시절 ===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에이스였던 [[박명환 (야구 선수)|박명환]]이 [[자유계약선수제도|FA]]를 선언하여 [[LG 트윈스]]에게 빼앗겼던 [[두산 베어스]]는 [[2008년]] 시즌을 앞두고 또 다시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리오스]]를 [[일본 프로 야구]] 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에 내줬다. 이로써 [[두산 베어스]]가 지명권이 있었던 김선우를 영입하며 그에게 기대했던 역할은 당연히 에이스의 역할이었다. 그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에서 비록 통산 13승을 거두는 데 그쳤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153&nbsp;km/h에 육박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역회전 무브먼트가 좋은 투심 패스트볼,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에서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직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김선우의 자신감은 그의 데뷔 시즌을 통해 철저히 무너졌다. 직구, 직구, 직구로 가는 단순한 일변도의 투구는 [[대한민국]] 타자들에게 읽히기 쉬운 투구 패턴이었고, 직구가 149&nbsp;km/h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타자들에게 계속 안타를 맞았다. 그리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투구를 했기 때문에 시즌 중에 계속 통증에 발목을 잡히기도 하였다.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예선 당시 다시 태극 마크를 달았으나 이후 부진으로 본선 대표팀에서 탈락했던 김선우는 [[대한민국]] 무대 데뷔 첫 해 초반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2군에 내려가기도 했고, 1군 6승 7패 평균자책 4.25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