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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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중립 필요 문장|날짜=2011-1-12}}
묘청의 난에 대한 평가는 찬반이 분명하다. 조선 말 일제 강점기 초기에 활동했던 [[신채호]]는 민족사관의 입장에서 묘청의 난을
이 서경천도운동은 그들의 공리심과 서경인의 기질 등이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나, 그밖에 그들의 정치적 혁신의 의욕도 간과할 수 없다. 당시 국내외의 정세에 비추어 개경의 타성적이며 부패한 귀족 사회의 생태를 좌시할 수 없어, 당시 인심을 지배하고 있던 음양도참설을 교묘히 이용하여 서경인 중심의 중흥정치를 베풀어 보고자 한 것이 그들의 당초의 이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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