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은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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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은 [[9년 전쟁]] 중에 [[비치 해드 해전 (1690년)|비치 해드 해전]]에서 [[프랑스]]에게 대패한 뒤 강력한 해군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기금은 120만 [[파운드 스털링|파운드]]에 달했지만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윌리엄 3세]] 정부가 끌어들일 수 있는 기금은 태부족이었다.
 
잉글랜드 정부는 기금 조성을 위해 잉글랜드 은행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발행하여 주주를 모집하였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은행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닌 주식회사로서 설립되었지만, 발권 권한을 부여받았다.<ref>{{cite서적 book인용|last=Bagehot|first=Walter|title=Lombard Street : a description of the money market|year=1873|publisher=Henry S. King and Co.|location=London|url=http://www.gutenberg.org/ebooks/4359}}</ref> 은행은 정부에 금전을 제공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폐를 발행하였다. 발행된 지폐는 대출업무에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120만 파운드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 절반이 해군 육성에 사용되었다.
 
해군 육성을 위해 [[철강업]]과 같은 산업 역시 육성이 필요하였고, 이는 경제 체제 변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로서 [[1707년 연합법]]에 의해 결성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은 강력한 해군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ref>{{cite web인용|url=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http://www.bbc.co.uk.news-channel.org/pressoffice/proginfo/tv/2010/wk2/feature_sea.shtml |title=BBC: Empire of the Seas programme |publisher=webcache.googleusercontent.com |date= |accessdate=10 May 2010}}</ref>
 
은행은 관련 법규가 마련되기 전부터 [[할리팩스 제1 백작 찰스 몬태규]]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되었고, 그 보다 3년 전부터 [[윌리엄 패터슨 (은행가)|윌리엄 패터슨]]가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ref>{{cite서적 book인용|url=https://books.google.com/?id=EkUTaZofJYEC&dq=British+Parliamentary+reports+on+international+finance&printsec=frontcover#PPA25,M1 |title=Committee of Finance and Industry 1931 (Macmillan Report) description of the founding of Bank of England |publisher=Books.google.ca |date= 1 January 1979|accessdate=10 May 2010|isbn=9780405112126}} "Its foundation in 1694 arose out the difficulties of the Government of the day in securing subscriptions to State loans. Its primary purpose was to raise and lend money to the State and in consideration of this service it received under its Charter and various Act of Parliament, certain privileges of issuing bank notes. The corporation commenced, with an assured life of twelve years after which the Government had the right to annul its Charter on giving one year's notice. '&#39;'Subsequent extensions of this period coincided generally with the grant of additional loans to the State'&#39;'"</ref> 이들은 120만 파운드의 모집을 위해 잉글랜드 은행 지주 회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청원하였고, [[1694년 잉글랜드 은행법]]이 공표되어 [[왕립 면허청]]으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았다.<ref>H. Roseveare, /The Financial Revolution 1660–1760/ (1991, Longman), pp. 34</ref> 당시 공공 재정의 상황은 매우 위중하여서 대출 금리는 연리 8%에 달했고, 해마다 대출 관리를 위해 4천 파운드가 소요되었다. 초대 총재는 [[존 허블런]]으로 1994년 발행된 [[잉글랜드 은행 50 파운드권]] 지폐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잉글랜드 은행의 사업 면허는 1742년, 1764년, 그리고 1781년에 갱신되었다.
 
=== 18세기 ===
[[File파일:The Old Lady of Threadneedle St.png|thumb|right|1797년 [[제임스 길레이]]가 지폐 발행에 반대하여 그린 만평. [[토니당]]의 당수 [[윌리엄 피트 (1759년)|윌리엄 피트]]가 잉글랜드 은행을 의인화한 "올드 레이디"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있다.]]
 
은행의 원래 위치는 시티 오브 런던 의 월브룩 거리에 있었다. 이곳은 1954년 재개발 당시 [[고대 로마]] 시대의 [[미트라교]] 신자들이 사용하던 [[미트라에움]]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mithra-i</ref>
 
잉글랜드 은행은 173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ref>{{cite web인용|title=Bank of England: Buildings and Architects|url=http://www.bankofengland.co.uk/about/Pages/history/buildings.aspx#|publisher=The Bank of England|accessdate=31 July 2015}}</ref>, 스레드니들 거리에 점차 금융기관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존 소언]](John Soane)이 지었던 기존 건물을 거의 허물고 [[허버트 베이커]](Herbert Baker)가 새롭게 건축한 것이다. 건축사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는 이를 "20세기 시티 오브 런던에서 일어난 건축학상 대범죄"라고 혹평하였다.
 
18세기에 [[영국 국채]]가 발행되기 시작하였고, 잉글랜드 은행에서 이를 관리하였다. 1781년 사업 면허 갱신에서 "은행은 발행된 화폐의 지급에 충분한 금을 보유하여야 한다"는 면허 조건이 있었지만, [[프랑스 혁명]]에 대항한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의 전쟁의 와중에 [[피쉬가드 전투]] 등의 전투로 [[금보유고]]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797년 2월 26일 정부는 은행의 금반출을 금지하는 [[1797년 은행 규제법]]을 공표하였다. 이 규제법은 1821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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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은행 승인법]]은 잉글랜드 은행에게 독점적인 발권 권한을 부여하고 금보유고와 화폐 발행을 연동하는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다. 이로서 이전까지 각자의 은행권을 발행해오던 시중은행들은 발권 권한을 상실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일부 시중은행들만 발권 권한을 승인받았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발권 은행들은 여전히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1866년 공황]] 시기 잉글랜드 은행은 처음으로 [[최종대출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ref>{{cite web 인용| url= http://www.voxeu.org/article/lender-last-resort-global-currency-sterling-lessons-dollar| title= From lender of last resort to global currency? Sterling lessons for the US dollar| publisher=VOX| date=23 July 2011| accessdate=8 May 2014}}</ref>
 
은행 승인법 이후에도 잉글랜드에서 화폐 발권을 계속하였던 마지막 시중은행은 웰링턴에 있던 [[폭스 파울러 앤 컴퍼니]] 은행으로 1927년 로이드 은행에 합병되었다. 폭스 파울러 앤 컴퍼니 은행은 아홉 곳의 화폐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그 중 하나는 웰링턴의 [[톤 데일 하우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