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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치나 주]] [[다우라]]에서 부유한 상인의 23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카트시나에서 학교를 마친 다음 영국과 미국, 인도 등에서 군사교육을 거쳐 군인으로 근무했다. 1975년 군사 쿠데타 성공 후 [[올루세군 오바산조]] 국가수반 밑에서 군 사령관과 석유장관 등을 역임했다.<ref>http://www.g-enews.com/ko-kr/news/article/news_all/201504091527450313163_1/article.html</ref> 1983년 12월 정부의 부패 및 경제정책 실패를 이유로 무혈쿠데타를 일으켜 [[셰후 샤가리]]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구 정권 인사에 대한 군사재판, 화폐 개혁, 국민기강 확립 운동 등을 펼쳤으나 재판 없이 무기한 구속할 수 있는 비상조치 단행, 언론통제, 경제 실패 등을 빌미로 집권 2년 만인 1985년 8월 27일, [[이브라임 바방기다]] 소장이 일으킨 쿠데타로 축출된 후 체포되어 40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졌다.<ref name="inauguration" />
 
2014년 7월 북부도시북부 도시 [[카두나|카두나 시]] 카오 시장에서 야당 지도자 신분이던 부하리의 차량 행렬에 [[보코 하람]]의 자살 폭탄 차량이 돌진해 최소 50명이 숨졌다. 부하리는 방탄 차량에 탑승하여 생존하였으며, 성명을 통해 "대량 학살이며 명백한 암살 시도"라고 비난했다.<ref>http://www.ytn.co.kr/_ln/0104_201407241307411204</ref> 2015년 3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인 [[굿럭 조너선]]을 이기고 4번의 도전 끝에 집권 30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ref name="inauguration" />
 
2015년 5월 29일 수도 [[아부자]]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정부를 출범하였다. 부하리는 취임식에서 경제 불안과 열악한 전기 생산 수준을 해결하는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 정면 대응할 것이며, 보코하람의 본거지였던 [[보르노 주]] 주도 [[마이두구리]]에 군사령부를 새로 설치하여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2014년 4월 [[치보크]]에서 납치된 219명의 여학생을 포함해 아직 보코하람에 감금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천 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ref name="inauguration">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9/0200000000AKR20150529207700099.HTML?input=1195m</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