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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는 9세에 [[한성부|한성]]으로 유학하여 서당에 입학하여 2년간 한학을 배웠다. [[1875년]] 11세 때부터 [[개화파]] 인사 [[서광범]](徐光範)의 친척 김정언(金正言)의 집에서 숙식하며 수학하였으며, 영특했던 그는 15세에 스승 [[김정언]]에게 과거에 응시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때 [[김정언]]의 인척 [[서광범]]이 그의 사랑에 있었는데 스승 [[김정언]]은 나이가 되지 않았다며 거절하였으나, 이를 목격한 [[김정언]]과 [[서광범]]은 그의 글재주가 비상함을 알아보았다.
 
[[1879년]] 15세에 [[한성부]] 정동 출신 [[진주강씨]] 부인과 결혼하였으나 7년만인 [[1886년]]에 사별하였다. 부인 진주 강씨 역시 서자 출신이었으나 자신을 양반가문이라 속이고 그와 결혼하였다. 그는윤치호는 본인이 서자이고, 자신의 아버지 역시 서자였으므로 이해하려 하였으나 강씨는 그가 출타중인 사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되었고, 임신하게 되자 그는 상심하게 되었다. [[1885년]] 백랑 등 첩들을 정동 집으로 들이면서 본부인 강씨는 본가로 되돌려보냈다. 친정으로 돌려보낸 강씨 부인은 이듬해 사망한다.
 
아버지 [[윤웅렬]]이 향반에다가 서얼 출신 [[무관]]이라서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게 된 그는 열심히 한학 공부에 몰입하였다. 한편 아버지 [[윤웅렬]]의 주선으로 [[박규수]](朴珪壽)의 문하생이 된다. 이때 그는 [[서재필]], [[김옥균]], [[서광범]], [[안경수]], [[홍영식]] 등을 만나게 되는데, 뒤에 그는 [[1896년]]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