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아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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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소카 치세 ===
[[파일:Asoka Kaart.gif|thumb|307px|left|[[아쇼카]] 왕 (260-218 BC) 때의 [[불교]] 전파]]
[[불교]]를 선양한 찬드라 굽타의 손자 [[아소카]] 왕(기원전 265년경 ~ 기원전 238년 또는 기원전 273경 ~ 기원전 232년)의 치적은 칙령들을 정교하게 돌에 새겨 그가 전국에 세웠던 비문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이 비문은 판독이 가능한 인도의 고문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지 9년째 되던 해 인도의 남동부, 현재의 [[오리사오디샤 주|오디샤]] 해안의 [[칼링가]] 지방을 정복했는데, 그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고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으며, 그 후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을 중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인 다르마(dharma: 法)에 의한 정치를 이상(理想)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는 데 진력하였다. 부모·어른에의 순종, 살생을 삼가는 등의 윤리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고, 지방관이나 신설된 관리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이 윤리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또 도로·관개(灌漑) 등의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당시 인도에는 그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없었고, 북서 국경의 그리스 세력도 그들 내분 때문에 다른 지방을 침략할 힘이 없었다. 이와 같은 정세에서 제반 생활양식이 다른 광대한 영토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가 취한 정책이 매우 현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면에는 원시불교의 영향이 있었다. 또한 그의 정치이념은 인근 제국이나 민족에게 전파되어 그의 사절(使節)이 [[이집트]]와 [[마케도니아 왕국]]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