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53번째 줄:
존 웨슬리가 아버지의 교구 목회를 도우러 고향에 내려 가 있는 동안, [[1726년]]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옥스퍼드 크라이스처치 컬리지에 입학하였다. 찰스는 입학 초기에는 경건하게 생활하지 않았었으나, 형 존과 어머니 수산나의 조언과 격려로 다자신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영적 생활을 새롭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 결심 후에 찰스는 매주일 [[성찬]]을 받으며 매일 규칙적으로 개인 기도를 하면서 경건생활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찰스는 두 명의 친구(윌리엄 몰간과 로버트 커크함)와 함께 작은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성경]] 공부와 경건 서적을 읽고 대화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1729년]] 11월 말 경에 웨슬리가 [[옥스퍼드]]에 돌아왔고, 웨슬리는 동생 찰스의 고전 연구를 지도하는 동시에 신앙 생활의 증진을 돕게 되었다. 웨슬리도 찰스가 시작한 모임에 참여하였고 자연스럽게 그 모임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이 신성회(Holy Club)의 시작이었다.
 
신성회는 매일 여섯시부터 아홉시까지 [[기도]]하고, [[시편]]과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읽기 위해 모였다. 이들이 보았던 책은 주로 [[초대 교회]]와 중세기 성자들의 [[신비주의]]와 [[종교개혁]] 시대와 당대의 경건한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당시 [[영국 국교회]]에서 1년에 3번 정도 성찬을 받아도 된다고 권고한 것과 달리, 신성회 회원들은 매주일 성찬을 받았다. 이들은 초대 교회의 전통을 따라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였다. [[17301730년]] 8월부터 신성회 회원들은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규칙적으로 방문하고 전도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윌리엄 모건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일은 후에 신성회의 사역 중 중요한 일로 정착하였다. 당시 [[감옥]]은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건이 극도로 나빴으며, 신성회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 [[겨울]]에는 [[석탄]]이나 [[나무]]를 갖다 주는 한편 심지어 빚을 못 갚아 들어온 죄수들을 대신해 빚을 갚아주고 석방시키기까지 했다.[[1732]년 웨슬리는 신성회 회원들이 사용할 《매일 기도집(A Collection of Forms of Prayer for everyday in the week)》을 썼는데, 이 기도집에는 [[주일]]부터 [[월요일]]까지 매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가 실려 있으며 "매일의 자기성찰 일람표(A Scheme of Self-examination)"가 포함되어 있었다. 신성회는 웨슬리가 정한 규칙과 기도집을 엄격히 지켰다.
 
이렇게 신성회는 지나칠 정도로 규칙적이면서도 매우 열정적으로 경건 생활에 매달렸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질시와 조소를 당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바로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이름이었다. 웨슬리 본인에 따르면 이 호칭은 [[네로]] 황제 시절 [[로마]]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의사]] 집단에서 유래하였다. 그 당시 [[의사]]들은 규칙적인 식이 요법을 통해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도디스트란 바로 이 [[의사]] 집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외에도 신성회는 "성경 벌레(Bible Moths)", "공로주의자들(Supererogation Men)<ref>이 용어는 선행을 많이 쌓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로마 가톨릭 교리에서 나온 용어이다.</ref>", "성례주의자들(Sacramentarians)", "초대 교회(Primitive Church)", "열광주의자들(Enthusiasts)"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