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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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rk Jong Yang.jpg|thumb|박정양, 1888년]]
'''박정양'''(朴定陽, [[1841년]] ~ [[1905년1904년]] [[11월]])은 [[조선]] 후기의 문신, 외교관, [[내각총리대신]], [[대한제국]]의 정치가이다. 구한말의 온건 개화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김홍집 내각]]에 참여하였다. [[조선]]의 첫 주미국 대사이기도 했다.
 
[[1866년]](고종 3) 문과에 급제, 참판 등을 지내고, [[1881년]] [[조사 시찰단]]을 조직하여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돌아와 관제 개정을 추진했다. 87년 미국특파 전권대사로 부임하여 외교활동을 하다가 [[청나라]]의 압력으로 귀국해야 했다. [[1894년]] 1차 김홍집 내각의 학부대신이 되고, 이듬해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자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과도내각을 조직했다. 그뒤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의 회의원이 되고 제2차 김홍집 내각의 학부대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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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 ===
[[1905년1904년]]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을 체결한 자들을 역적으로 규정, 처벌할 것을 상주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히려 [[을사오적]]을 사형에 처할 것을 상주하였다. 그해 궁내부특진관과 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를 거쳐 [[9월]] 표훈원 총재(表勳院總裁)에 임명되었으며 [[대한제국]] 정부에서 주는 태극훈장(太極勳章)을 수여받았다. 초조함과 긴장이 심해져 번열증(煩熱症)을 앓았으며 과로로 병이 심해져 [[1905년1904년]] [[11월 14일]] 표훈원 총재직을 사퇴하였고, 그해 11월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죽천고 (竹泉稿)》, 편저로는 《해상일기초 (海上日記草)》, 기행문으로는 《일본내무성급농상무성시찰서계 (日本內務省及農商務省視察書啓)》, 《일본내무성시찰기 (日本內務省視察記)》, 《일본농상무성시찰기 (日本農商務省視察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