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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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은 본명 kolleen park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일 뿐, 박영미라는 한국어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1989년 mbc 대학가요제 미주본선에도 이 이름으로 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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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캘리포니아 예술대학([[:en: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첼로를 전공하였는데 대학 재학 중에는 [[1989년]]에 [[대한민국]]의 [[MBC 대학가요제]]에서 《사막의 비》라는 곡으로 참가하여 본선 진출 입상을 한 바 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으로 다시 귀국하여 1991년 [[서울대학교]] 국악과 대학원에 입학했다.<ref>[http://www.mystarnews.com/mystar/index.html?no=423649 무릎팍 도사' 박칼린 "외국 국적 때문에 고 박동진 명창 전수자 못 돼"] 마이스타뉴스 2011년 4월</ref> 7~8살때 부산에서 한국무용을 배우면서 음악에 대한 친밀감이 있었고 국악의 멜로디에 이끌려 국악과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때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판소리를 하던 명창 [[박동진]]에게 선택되어 사사했다. 대학원에서 국악과를 다니고 있을 때 하와이에서 열린 명창·명인들의 공연이 있었을 때 박칼린은 무용선생님의 조수로 따라갔다. 당시 박동진을 모시지도 않았었고 같이 몇번 식사한 정도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나 마지막날 식사자리에서 박동진이 박칼린에게 "넌 소리를 해야겠다"고 하며 수업료도 받지 않고 박칼린을 가르쳐줬다. 박동진은 박칼린을 인간문화재 후계자인 전수자로 삼고 싶어해 직접 문화재청에 가서 문의했더니 "한국의 문화재를 등록해 매년 지원금도 나오는데 외국인에게 해줄수는 없다"는 답변을 듣고 무산되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9&aid=0002168552 박칼린, "故 박동진 선생의 인정만으로도 행복했다"] OSEN 2011년 4월</ref>
 
=== 뮤지컬과의 인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