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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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1942년]] [[일본]] [[교토 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ref>[https://archive.is/20120708010914/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783541 국가대표] - 중앙일보 칼럼</ref> 경남본적(부모 진양이고향)은 본관인[[경상남도]] 김 감독은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진양군]]이다. 김 감독의 부친은 그가 어릴어렸을사망했고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집안 형편은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했다. [[교토]] 가쓰라고등학교(京都府立 桂 高等學校)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 한국인|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 [[1961년]] [[교통부]]에 입단하고 [[중소기업은행|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되면서<ref>야구 팀 결단 중소기업은행에서, 동아일보 1962년 3월 11일</ref>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되어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광역시|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로 뛰었던 [[1967년]] 현재의 아내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한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
 
== 지도자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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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공로상
 
== 참고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