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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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시강원 사서, 지평, 사간 등을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승지를 거쳐, 57년 [[대사성]]이 되었다. 그 후 이조참의,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가선대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를 거쳐 68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이후 우참찬을 지냈고, 산릉도감제조와 전라도관찰사와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공조판서, 수어사, 우참찬, 좌참찬, 지경연사, 이조판서를 지내며 [[조선 정조|세손]]에 대한 모해사건이 있을 때 당숙 홍봉한, 족질 [[홍국영]]과 함께 세손을 지원하였다. 이후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가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정조]] 즉위후 [[의정부]][[우의정]]을 거쳐 [[의정부]][[좌의정]]에 등용되었다. [[1784년]] 청나라에 파견되는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귀국 후 [[1793년]] [[영의정]]이 되었다. [[1797년]] 만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로 전직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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