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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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공화정]]기의 신분 투쟁으로 로마는 로마 특유의 민주정과 과두정이 혼합되었다. '{{llang|en|republic}}'의 어원이 된 '{{llang|la|res publica}}'는 '공공의 일'을 뜻하는 말이었다.<ref>M.하이켈하임, p.103.</ref> [[로마법]]은 전통적으로 민회에서만 표결로 투표할 수 있었다.([[트리부스회]]) 마찬가지로 공직 출마자도 인민이 선출했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자문 기능을 하는 과두적인 정치 기구였다. 공화정에서 원로원에는 강력한 권위(auctoritas)가 있었으나 기능상 자문 기구이므로 입법권은 없었다. 그러나 원로원 의원들은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원로원의 집단적인 의지에 맞서기는 힘들었다.<ref name="h110">M.하이켈하임, p.110.</ref> 원로원 의원은 [[감찰관]]이 명문 귀족 중에서 임명했는데, 감찰관은 "부도덕한" 행실을 한 의원을 면직할 수도 있었다. 가령 [[뇌물]]을 받는다거나 혹은 [[소 카토]]가 감찰관이던 시절에 공공 장소에서 자신의 아내와 포옹하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나중에 [[독재관]] [[술라]]의 개혁으로 [[재무관]]은 자동적으로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로마 공화정에는 엄격한 관료제가 없었으며, 세금도 징세 청부를 통해 거두었다. [[재무관]], [[조영관]], 혹은 [[장관]](praefectus) 등 정무관은 본인 돈으로 공무를 처리했다. 시민 개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정무관은 1년 임기로 선출되었으며, 동료 정무관과 권력을 분할하도록 하였다. 가령 평상시에는 최고 권력은 집정관 두 사람이 함께 보유했다. 비상시에는 임시 [[독재관]]을 임명할 수 있었다. 공화정 시대에 행정 체제는 필요할 때마다 수차례 개정되었다. 결국 로마가 크게 팽창하면서 공화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로마 제정|제정]] 성립으로 이어진다.
 
제정 초기는 정부는 공화정의 형태를 가장하였다. 로마 황제는 그저 ''제1시민''(priceps)일 뿐이었으며, 원로원은 과거 민회가 보유하던 입법권과 모든 법적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황제의 권력은 점차 전제 권력으로 발전했으며, 원로원은 황제가 임명하는 자문 기구로 전락하였다. 로마 제국은 공화정 시대의 행정 체제를 물려받지 않았는데, 공화정에는 원로원 외에 영속적인 행정 기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최고위 행정가와 원로원 의원, 자신의 친구, 전문 법률가 등을 모아 조언을 구하였으며, 원로원 의원, 기사, 피해방인, 심지어 노예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기용하여 곡물, 수도, 치안, 법, 재정 등 일종의 행정 조직을 구성하였다.<ref>M.하이켈하임, p.557~55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