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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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무렵 지금의 [[쿤밍]] 일대는 진(滇)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초 (춘추전국)|초나라]]의 장군 [[장교]](庄跤)가 [[장강]] 상류를 통해 이 지역에 들어간 후에 스스로 진왕이라 칭했다. 그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계속하여 이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제국의 판도를 남쪽으로 확장한다. 윈난지역에도 몇 개의 군이 설치된다. 쓰촨에서 시작되는 오척도(五尺道)라는 길은 지금의 성 동부인 취징(曲靖) 부근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한나라때인 기원전 109년 한무제가 곽창(郭昌)을 보내 익주군을[[익주군]]을 설치하였고 그 자리는 지금의 진닝(晋宁)이었다. 당시 [[버마]]와 [[인도]]를 상대로 한 무역 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한무제는 당몽(唐蒙)을 보내 오척도를 지키고 확장하도록 하고 그 이름을 서남이도(西南夷道)라고 하였다. 이 시기에 윈난 지역의 농업이 눈에 띄게 발전한다. 청동제 농기구를 사용하고 소, 말, 양, 염소, 돼지, 개 들의 가축을 길렀다. 이 사람들은 타이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생활을 하였고, 때때로 탈출해온 중국인이 이들을 통치하기도 했다.
 
[[사기 (역사서)|사기]]에 의하면 [[장건]](張騫)과 [[사마천]](司馬遷)은 선두에 대한 기술을 하는데, 이 지역은 현대 파키스탄 지역인 인더스 계곡의 산스크리트어인 신두를 의미한다. 윈난 지역이 한 왕조에의해 정복되었을 때, 한족 관료들은 이 곳에 살고 있는 선두인들의 공동체를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