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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천문학자인 [[케플러]]가 처음으로 저술한 책은 1596년에 출간된 《우주구조의 신비》였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쓰기에는 매우 호연지기적인 이 책의 주제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었고, 그 내용은 우주에는 수학적인 조화가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 우주에는 오로지 여섯 개의 행성만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상당히 특이한 질문을 제기하였고 그것은 바로 우주에는 5개의 정다면체([[플라톤의 다면체]])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세상에는 오로지 5개의 정다면체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 사이의 공간은 오로지 다섯 곳이어야 하고 그것이 행성들의 숫자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케플러는 우주와 수학을 긴밀하게 연관시키던 [[신플라톤주의]]자였기 때문에 우주는 조화롭고 단순한 수학적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모형을 이용하여 나타낸 행성의 위치는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인 [[튀코 브라헤]]의 관측 사실과 완전히 불합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케플러는 이 모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케플러]]는 [[튀코 브라헤]]의 천문대에서 관측사로 일했는데, 브라헤의 조수였던 [[크리스티안 쇠렌센 롱고몬타누스|롱고몬타누스]]가 실패했던 [[화성]]의 궤도를 계산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케플러가 이 일을 담당한 직후 브라헤가 사망하게 되었고 케플러는 브라헤가 남겨 놓은 엄청난 양의 정밀관측 자료를 토대로 화성의 궤도를 계산하였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가 제안한 작은 주전원을 이용하여 튀코 브라헤의 관측 결과에 합치시키기 위해 무려 70번이나 계산을 하였다. 케플러는 이러한 계산 결과를 1609년에 출간하였으며, 이 결과는 《원인들에 근거한 새로운 천문학 혹은 화성의 운동에 대한 주석을각주을 토대로 주창된 천체 물리학》이라는 책에 실렸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된 [[태양중심설]]을 완성하였다.
[[파일:Scoreofplanet.png|thumb|600px|centre|'''음으로 표현된 행성들''' [[케플러]]는 행성이 운행하면서 내는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수학과 음악의 밀접한 연관성을 통해 만물을 수학으로 접근한 케플러의 사고가 잘 드러난다.]]
[[케플러]]는 [[튀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놓고 행성들이 따르는 궤도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의 출발점은 행성들이 원궤도를 그리면서 회전한다는 것과 회전하는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지구를 대상으로 궤도를 그렸었는데 그것은 완전한 원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지구를 보류한 다음 [[화성]]의 궤도 문제로 옮겨 갔다. 나중에 ‘화성과의 전투’라고 불리었던 5년 동안의 엄청나게 지루하고 장황한 수학적 계산 끝에 마침내 그는 행성들의 궤도가 달걀 모양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한 가설에서 다른 가설로 시행 착오를 계속한 끝에 마침내 플라톤 이후 서구 세계를 지배해 온 ‘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 원이 아닌 타원, 원에서 타원으로의 이행, 이것은 서양 과학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위대한 혁명이었던 것이다<ref>별 세계 보고, 스티븐 호킹(김동과 역), 창작과 비평사, 42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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