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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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 [[한시]]
| 직업 = [[시 (문학)|시인]]
| 학력 = 1826년 백일장 과거에과거 장원 급제
| 종교 = [[유교]]([[성리학]])
| 활동 기간 = [[1826년]] ~ [[18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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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장남 김학균(金學均)<ref>형 김병하(金炳河)에게 양자로 출계</ref> <br /> 차남 김익균(金翼均) <br /> 3남 김영규(金英奎)
| 부모 = 아버지 김안근(金安根) <br /> 어머니 [[함평 이씨]] 부인(咸平 李氏 夫人)
| 친척 = 할아버지친조부 [[김익순]](金益淳) <br /> 외할아버지외조부 이유수(李儒秀) <br /> 형 김병하(金炳河) <br /> 아우 김병호(金炳浩) <br /> 아우 김병두(金炳浢)
}}
'''김병연'''<ref>[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3g1607a 브리태니커 - 김병연]</ref><ref>[http://100.naver.com/100.nhn?docid=30812 두산백과사전 - 김병연]</ref>(金炳淵, [[1807년]](순조 7년) ~ [[1863년]](철종 14년))은 [[조선 후기]]의 풍자 [[시 (문학)|시인]]이자 방랑 [[시 (문학)|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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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세에 방랑을 시작한 후로 가족과 연락을 일절 취하지 않았으나 한때 그의 아들 [[김익균]]을 만나 3차례 정도 귀가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방랑을 계속했다. 그 후 사실상 마지막 방문지인 전라남도 화순에 들렀던 중 1863년([[철종]] 14) 안 참봉의 사랑방에서 죽었는데 아들 익균이 부고(訃告)를 듣고 화순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시신을 강원도 영월로 운구하여 그 곳에서 안장되었다.
 
== 전라도 화순 기거 여부 논란 ==
일각에서는 김삿갓이 사실상 마지막 방문지라 할 수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6년간 생활했는지를 놓고 논란을 제기하였다. [[화순군]] 관계자는 김삿갓이 화순군 동복면에 머물러서 6년 동안 있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향토역사학자 문제선 씨는 김삿갓이 화순을 다녀간 것은 사실이나 6년간 기거했다는 입증할만한 역사 자료는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방랑시인' 김삿갓 화순에 6년간 기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854881|출판사=연합뉴스|저자=|쪽=|날짜=2009-09-09|확인일자=2010-03-31}}</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