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바티아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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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띠아또는 더이상 프로그레시브 록을 하지않고 대중음악가가 되어 레이블도 EMI로 옮긴다. 작업을 도와주던 바이올린 주자 Giusto Pio의 참여로 사운드가 풍성해졌다.
 
그는 La voce del padrone(1981)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앨범은 최초로 이탈리아 내 판매량 100만장을 넘은 앨범이 되었다. 이런 상업적 성공은 알리체와 함께한 곡 I treni di Tozeur로 이탈리아 대표가 되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했을때(1984) 절정을 달렸다절정이었다
 
Fisiognomica(1988)도 30만장 이상 팔린 히트작이며 바띠아또 스스로 음악과 가사가 가장 조화를 이룬 앨범으로 여기는 작품이다. Veni l'autunnu같은 곡은 시칠리아어와 아랍어 가사를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