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군 (144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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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년]] '''정양군'''(定陽君)에 책봉된 이후 [[1461년]]에 왕족 종실 관직 출사하여 [[조선 세조|세조]] · [[조선 예종|예종]] · [[조선 성종|성종]] 등에 걸쳐 3군주를 모신 그는 종친부 중급 간부를 거쳐 내수사 사옹원 도제조를 역임, 이후 정1품 흥록대부에 이르렀다.
[[1492년]] 그가 와병 당시 5촌 종조카 [[조선 성종|성종]]이 친히 의원 방문 조치 처분과 탕약을 하사한 바 있으며 같은 해 [[1492년]]에 그가 끝내 훙(薨)하자 성종 임금은 그의 부음을 접한 직후 매우 애도의 뜻을 표하며 3일간 조회를 폐하는 등의 부의를 표명하며 종친부 예하 관부에 후하게 장례할 것을 하명하는 등 남다른 성은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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