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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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이름은 찬(禶), 자(字)는 연재(憐哉),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아버지는 [[조선 장조|장조]]로 추존된 [[조선 장조|사도세자]]이며, 어머니는 [[경빈 박씨 (장조)|경빈 박씨]] 빙애이다.<ref>고종 때 경빈으로 추증되었다. 생전 작위는 귀인이었다.</ref> [[의소세손|의소세자]]와 [[조선 정조|정조]], [[은언군]], [[은신군]]의 이복 동생이다. 부인은 평양인(平壤人) [[조성]](趙峸)의 딸 군부인 조씨(郡夫人 趙氏)이다.
 
장조의 서자로 [[1759년]](영조 35)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3살되던3살 되던 [[1762년]] 생모 귀인 박씨 빙애는, 의대병이 있던 [[조선 장조|사도세자]]가 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생모 귀인 박씨 빙애를 살해한다. 빙애를 구타할 때 [[사도세자]]는 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이 갓 지난 왕자 은전군도 칼로 쳤다. 그리고 칼 맞은 은전군을 문밖문 밖 연못에 던졌다. 이를 알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은전군을 구하여 이름을 하엽생(荷葉生), 곧 '연잎이'라고 불렀다.<ref>[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3/10/18/201310180500013/201310180500013_3.html 권력은 나눌 수 없다? ‘영조의 비극’ 외면한 편견]</ref> 영조는 자(字)를 연재(憐哉), '가련하도다!'로 지어주었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나 상궁들에 의해 양육되었다. [[조선 장조|사도세자]]와 [[조선 정조|정조]]를 미워하던 [[노론]]은 그가 부친에게 적개심을 품었을 것이라 내다봤고,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다른 자녀들 중 부친에게 적개심을 품었을 것이라 내다봤고,중에서 그를 유독 주목하였다. 은전군을 추대하려던 이들 중에는 [[조선 정조|정조]]의 친모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친정 일족들도 끼어 있었다.
 
=== 정치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