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중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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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세를 감안하여 제갈량은 유비가 형주와 익주를 영유함으로써 조조, 손권과 함께 중국을 셋으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손권과 동맹을 맺고 조조를 막아내며, 유사시 형주를 통해 바로 지척인 [[낙양]]을 공격하고 또 익주의 군대는 [[서안|장안]]을 공격하면 조조를 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벽대전]] 후 유비는 형주 영유에 성공하고, 나아가 214년 유장을 거세하고 익주도 손에 넣는다. 이어 219년 [[조조]]와의 [[한중 전투]]에서 승리하여 형주와 익주, 한중에 이르는 조조, 손권과 버금가는 광대한 세력을 갖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융중대는 완성되는가 싶었지만 219년 [[관우]]가 [[형주 공방전]]에서 [[여몽]]에게 패배하여 형주를 잃고, 형주 탈환을 위해 침공한 유비도 [[이릉대전]]에서 [[육손]]에게 대패, 융중대는 사실상 폐기된다.
 
이후 제갈량은 형주를 잃은 대신 북쪽의 서량을 정복하여 관중으로 쇄도하는 옹양주 겸병을 새로운 대전략으로 마련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 [[제갈량의 북벌|소위 북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