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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병'''(尹始炳, [[1851년]] [[1월 1일]] ~ [[1932년]] [[2월 5일]])은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개화파 인물로, 초기 [[일진회]] 조직을 주도했다.
 
== 생애 ==
[[과거 (조선)|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병사를 지냈다. [[1894년]] [[동학]]에 동생인 [[윤길병]]과 함께 입문했다<ref>황현, 《매천야록》제4권 갑자년(1904, 고종 41년)</ref>.
 
[[1898년]] [[만민공동회]]에 참여, 회장으로 선출되고 [[독립협회]]에도 가담하여 개화파로 활동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각처를 방랑하면서 정국 추이를 지켜보던 중, [[러일 전쟁]]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진주해 오자 일본군 통역으로 나섰다. 이 때 [[최석민]]을 통해 [[송병준]]을 만나 [[1904년]] [[일진회]]를 조직하였다. 윤시병은 일진회 회장을 맡았고, 동생 윤길병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윤시병은 러일 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의 북진을 돕기 위해 [[일진회]] 회원을 동원, 군수물사 수송과 정보 활동을 벌여 일본군을 크게 도았다. 이 일로 [[일본]]으로부터 일훈욱일사등장(日勳旭日四等章)을 받았다. [[을사 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뒤 일진회를 버리고 또다른 친일단체인 [[조선노동협회]]를 조직하였다.<ref>김삼웅,{{서적 《친일정치100년사》(동풍,인용 1995년) 56쪽.</ref>.
|저자=김삼웅
|제목=친일정치 100년사
|발행일자=1995-07-01
|출판사=동풍
|출판위치=서울
|id=ISBN 9788986072037
|페이지=56
}}</ref>
 
자신이 회장까지 지낸 일진회를 떠나 조선노동협회를 결성하게 된 까닭은 송병준과의 불화에 있었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제의 후원을 얻은 일진회 회원들은 송병준이 농상공부대신으로 입각하는 등 일제히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일진회의 대표격으로 등용된 송병준과 관직 배분을 놓고 사이가 벌어진 회장 윤시병은 회장 자리를 [[이용구]]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