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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경력==
조동익은 어려서 형 조동진의 기타치는 모습을 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고등학생 때 쓴 '어떤 날'이라는 곡이 조동진의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되었다.<ref name="ddanzi">{{뉴스 인용|url=http://www.ddanzi.com/blog/archives/2141|제목=<nowiki>[(딴따라]) 이달의 뮤지션-, 조동익</nowiki>|출판사=딴지일보|저자=너부리|날짜=2005-03-08}}</ref>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앞 카페 '뮤직 모노'에서 DJ를 하며 [[한영애]]와 [[전인권]], [[한상원]]을 만났다. 1984년에는 조동익은 [[이병우]]와 만나서 프로젝트 그룹 '[[어떤날]]'을 결성하고 [[최성원]]의 기획 아래 앨범 [[어떤날 I]]
을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tain/200906/wk20090624161232105310.htm| 제목=편곡자 조동익·기타리스트 이병우 듀오|저자=최규성 |출판사=주간한국 |날짜=2009-06-24}}</ref> 이들은 총 [[:분류:어떤날의 음반|2장의 앨범]]을 만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하는 것을 펑크낼 만큼 대중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성격이었고 이후 조동익은 주로 [[동아기획]]의 녹음실에서 스튜디오 세션과 편곡 일을 병행하였다. 그러면서 [[시인과 촌장]], 조동진, 최성원 등의 음반에 [[베이스 기타|베이스]] 세션 및 편곡, 작곡자로 참여하였다.
 
조동익은 1992년에 조동진과 그 동료인 조원익과 함께 [[하나음악]]을 설립하였다. 이후 그는 하나음악의 여러 음반들에서 작곡, 제작과 세션으로 참여하였다. 이 무렵 [[함춘호]]와 김영석, 박용준과 함께도 많은 세션 작업을 하였다. 1992년에 조동익은 오랜 음악적, 정신적 동료 [[장필순]]의 세 번째 앨범을 편곡하였으며 그러다가 1994년에 스스로의 첫 독집 음반 《동경》을 발표하였다. 1995년 장필순의 4집 《하루》를 내놓은 하나음악은 재정 압박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2년 뒤 1997년에 조동익이 전곡을 편곡한 장필순의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발표되었고 하나음악은 다시 문을 열었다. 조동익은 1998년에 그의 두 번째 독집 음반 《Movie》를 발표하였다. 이후 그는 정식 및 프로젝트 음반들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며 작업을 하였지만 2003년 그가 주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한 《하나뮤직 Project 4 : Dream》을 끝으로 하나음악은 다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2011년에 하나음악은 서브 레이블 '푸른곰팡이'를 통하여 조동익은 소속 음악인들과 활동을 재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473793.html |제목=<nowiki>진짜 음악이 그리운 시대…‘전설의시대…'전설의 공동체’공동체' 하나음악, 다시 뭉쳤다</nowiki>|저자=서정민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11-04-19}}</ref> 현재 그는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19381 |제목=<nowiki>25년만 재결성 ‘들국화’들국화 ...“첫 '첫 입맞춤 제주였다”</nowiki>제주였다'|저자=김태연 |출판사=제주의 소리 |날짜=2012-08-24}}</ref>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