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영화 감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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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안성]]에서 출생하였고 [[이천시|경기도 이천]]과 [[평택시|경기도 평택]]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한경대학교|경기도 안성고등농림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서울대학교|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청소년 시절 문학에 관심을 가져 습작 [[소설]]을 쓰기도 했고, 자작 [[희곡]]을 무대에 올려 [[연출가|연출]]과 [[연극 배우|주연]]을 겸하는 등 [[연극]]에도 자질을 보였다.
 
[[1946년]]경부터 [[서울교육대학교|서울사범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다가 [[한국 전쟁]] 중인중이던 [[1951년]]에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육군 갑종장교 임관하여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속이 되면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정훈국에서는 작가 [[선우휘|선우 휘]]의 지휘 아래 군인 교육용 영화를 약 30여 편 만들었다.
 
당시 문관으로 근무하던 영화감독 [[양주남]]의 주선으로 그의 조감독이 되면서 《배뱅이굿》(1957) 촬영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듬해 코미디 영화인 《공처가》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초기에는 《공처가》와 같은 계열의 희극 영화를 촬영했으나, [[1963년]] [[김승호]]와 [[황정순]] 주연의 《굴비》라는 영화 작품을 전환점으로 삼아 좀 더 진지한 영화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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