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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파라과이의 역사}}
=== 식민지배 전후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파라과이는 숲이 우거졌고 비옥한 땅이었다. 그곳에서 半유목 생활을 하며 과라니어를 쓰는 부족들이 살았으며, 용맹한 전사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1525년]] [[에스파냐]] [[A.가르시아]]가 파라과이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로 [[1536년]]부터 식민지화를 시작했다. 1537년 8월 15일 [[아순시온]]에 [[에스파냐]]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이 에스피노사]]가 정착지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18세기 남아메리카에 정착한 [[예수회]]의 선교지였으며, 에스파냐 식민지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 동부 파라과이에 [[예수회 공회도소]]가 설치되어 150여년간 번성했으나 1767년에 에스파냐 왕가가 예수회를 추방했다. 파라과이는 [[1811년]] [[5월 14일]]에14일에 에스파냐 지역 정부를 전복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파라과이의 역사는 공산주의 정부와 정치적 불안정과 내분, 이웃나라와의 전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1949년 콜로라도당의 페데리코 차베스(Federico Chaves)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5년 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장군의 쿠데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새 대통령 스트로에스네르는 군사독재정치를 실시했으며, 반대자를 탄압하고 파라과이에서 쫓아내는 등 가혹한 통치를 하였다. 또한 부정선거를 통해 무려 7번이나 재당선되었다. 1980년대 후반 아들인 구스타보에게 세습을 시도하다가 이에 분노한 안드레스 로드리게스(Andrés Rodríguez)장군의 쿠데타로 추방당했다. 새 대통령 로드리게스는 민주화 정책을 실시했으나 스트로에스네르와 마찬가지로 반대자들을 탄압하고, 1992년 대선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자신이 지지한 와스모시 몬띠(Wasmosy Monti)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이로써 차베스 이후 39년 만에 민정을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와스모시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만, 군의 방해와 경제 사정 악화 등으로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이를 계기로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는 등 테러의 위험에 둘러쌓이게 된다. 1998년 라울 꾸바스(Raúl Cubas)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르가냐부통령의 암살과 오비에도장군의 권력남용 등에 대한 책임으로 7개월만에 파면당하고 말았다. 1999년 곤살레스 마끼(González Macchi)가 권한을 승계받았지만, 뇌물수수와 국가이미지 실추 등으로 지지율을 잃고 말았다. 2003년 새로 선출된 니까노르 두아르떼(Nicanor Duarte)는 부패추방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경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말았다. 2008년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61년 만에 좌파정권 복귀를 이루었고,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루고는 41%에 가까운 득표율로, 콜로라도당의 [[블랑카 오벨라르]]는 약 31%에 그쳤다. 무토지 농민 시위의 유혈진압의 책임을 물어 루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2012년에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13년 8월 15일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당선되어, 5년 만에 콜로라도당 정권 교체를 따라 복귀하게 되었다.
 
== 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