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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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본의 강요로 [[1943년]] [[조선기독교단]]으로 강제 통합당한 감리교회는, 해방후 다시 분리되어 새로 교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재건파와 복흥파로 분리되는 등 홍역을 앓았다. 그러나 그 이후 다시 통합되어 [[1949년]] 현재의 이름이 채택되었다. 이후 [[1971년]] 경기연회 사건으로 총리원과 총회(갱신)측으로 분리되기도 하였으나[http://100.naver.com/100.nhn?docid=759439], 이후 재통합돼 감리교단은 현재 대한민국 개신교 교파중에서 유일하게 교파 분열을 겪지 않은 교회이다. 다만 2008년 감독회장 선거로 시작 된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선출 논쟁]]이 있었으나 2013년 현재 전용재 목사가 감독회장에 당선됨으로써 일단락됐다. 현재까지 감독 선출과 교회 운영은 감리회 본부와 총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01년]] [[김창식]], [[김기범 (목회자)|김기범]]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목사로 안수받았다. 또한 [[1955년]]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전밀라]], [[명화용]] 두 여성이 목사안수를 받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되어 있다. 70년대에는 민주화투쟁 및 노동자 운동, 도시산업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인권과 시민의 권리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