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루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2번째 줄:
제2대 [[다루왕]]의 맏아들로서 서기 33년 ([[다루왕]] 6)에 태자로 책봉되어 77년에 [[다루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루왕 치세에 대한 기록에는 천문이변 지진 큰 가뭄 태풍 기상이변 등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기록의 내용이 흉년 재난 또는 흉조를 뜻하는 것들이 많음은 기루왕 치세의 [[백제]]가 큰 시련기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루왕]]에 대해서는 서자라는 설이 있으며,그 이유는 기루왕 21년([[97년]])에 두마리 용이 한강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음에 따라 반란을 은유하며, 기루왕 27년([[103년]])에 왕이 한산에서 사냥해서 신록을 잡았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때 잡은 신록이 [[개루왕]]일 것이란 설이 있고 [[개루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나이 차이가 매우 큼 역시 이를 방즣한다방증한다. 고이왕이 [[개루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므로, [[부여질]] 역시 확실하게 기루왕의 아들일 수 없다.
 
== 가계 ==